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과정

보물

by 북도슨트 임리나

보물-결과의 보물이 아니라 과정으로서 ‘보물’

보물-결과의 보물이 아니라 과정으로서 ‘보물’


보물을 처음 읽었을 땐 이삭이란 주인공이 마지막에 자기 침대 밑에서 보물을 발견했을 때 나는 그 유명한 <파랑새>를 떠올리며 ‘소중한 건 가까이 있는 것’이란 결론을 내리려 했다.

그랬다면 아마 이 책을 금방 잊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에 쓰인 글귀가 두고두고 생각이 났고 그 글귀로 인해 이 책을 몇 번이고 다시 들쳐보게 되었다.

그 마지막 글귀란 유일하게 이 책 중에서 필기체로 쓰인 문장이기도 했다.

가까이 있는 것을 찾기 위해 멀리 떠나야 할 때도 있다


그래서 다시 찬찬히 책을 보기 시작했다.


옛날에 이삭이란 사람이 살았는데 가난해서 저녁도 못 먹고 자기도 했다. 그런데 꿈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수도에 가면 왕궁 앞다리 밑에 보물이 있으니 찾아보라고 했지만 꿈일 뿐이라고 무시하다가 세 번째 꿈을 꾸고 나서야 길을 떠난다. 숲을 지나 산을 넘어 걷고 또 걷는다.

그런데 왕궁 앞다리로 가 보니 보초들이 그곳을 밤낮없이 지키고 있어서 보물을 찾지 못하고 몇 날 며칠을 서성이니 보초 대장이 말을 걸었다.

왜 여기서 서성이냐고 그러자 ‘보물’ 얘기를 하자 보초 대장은 ‘무슨 쓸데없는 얘기냐며 내 꿈대로라면 당신이 떠나온 그 마을로 가 이삭이란 사람의 아궁이 밑에서 보물을 찾아보라’고 한다. 이삭은 다시 산을 넘고 걷고 또 걸어가 고향에 도착했다. 그래서 자신의 집 아궁이를 파보니 정말 보물이 있었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배당을 세웠고 벽 한 귀퉁이에 써 놓은 글귀가 바로 ‘가까이 있는 것을 찾기 위해 멀리 떠나야 할 때도 있다’였다.

그리고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삭은 보초 대장에게 값비싼 보석을 보내주었고 죽는 날까지 가난하게 살지 않았다고 한다.


이쯤에서 생각하게 되는 건 과연 ‘보물’은 무엇이었을까?이다.

만약에 발견한 그 결과물이 ‘보물’이라고 본다면 보물을 찾기 위해 상당히 오랜 시간 쓸데없는 일들을 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당신 집에 있는데 말이야 라고.

그런데 다르게 생각하게 만든 건 마지막 글귀였다.

‘가까이 있는 것을 찾기 위해 멀리 떠나야 할 때도 있다.’

‘소중한 것은 가까이에 있다’와 아주 다른 말이었던 것이다.


‘소중한 것은 가까이에 있다’라고 한다면 그걸 모르고 떠난 것이 어리석음이 되지만 ‘가까이 있는 것을 찾기 위해 멀리 떠나야 할 때도 있다’라는 건 그 모든 과정이 중요하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 인생이란 가까운 것을 찾기 위해 멀리 떠나야 할 때가 있다.

모든 것을 최단 시간에 최단 거리로 해결하면서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가난해서 무기력한 이삭, 밥이 없어서 잠만 자던 이삭이 처음부터 아궁이에 보물이 있었다는 목소리를 들었으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이삭에게 멀리 떠날 ‘이유’가 없었다면 이삭은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어쩌면 보물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그걸 가지고 무엇을 하려고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삭은 몸을 일으켜 수도까지 걸어가는 동안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다.

그리고 먼 길을 걸어가서 만난 보초가 한 말은 어쩌면 정말 훌륭한 조언이었을지 모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조언자’도 필요하다. 그리고 그 조언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그래서 이삭은 그 조언자에게도 고마움의 표시로 보물을 보내주었던 것 같다.

만약에 이삭이 이 모든 과정에서 마지막에 보물을 발견하고 가까이 있었다고 괜한 짓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은 이유는 보물을 찾는 과정에서 얻었던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이삭을 보고 있노라니 나의 인생이 마치 수도로 떠난 이삭의 여정처럼 느껴졌다. 나는 늘 늦게 깨닫는다고 이 만큼 힘들지 않고 노력하지 않아도 ‘원래’ 있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후회하는 일들이 많았는데 그 ‘과정’이 없었으면 깨달을 수 없었다는 걸 ‘보물’을 통해 알게 되었다.


아마도 ‘결혼’이 나에게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나는 이혼 후, 결혼에 대한 비판 주의자였으며 오랫동안 무기력한 시간을 보냈다. 이혼 후 나는 일본으로 일하러 떠났었고 그때 회사와 집만 오가며 특히 밤에는 맥주 한 캔을 마시고 자는 것이 나의 유일한 일과였다. 이삭이 침대에 누워서 잠만 잤던 것처럼 그렇게 몇 년을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다시 결혼을 결심하게 되는데 그렇게 된 과정에는 나는 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내가 싫어했던 건 실패한 결혼이었던 것이지 좋은 남자를 만나 좋은 결혼 생활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깊은 곳에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후에 이삭이 길을 떠난 것처럼 집을 나와 이곳저곳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재혼을 했다.


재혼을 한 후에 나는 왜 처음부터 나는 결혼의 소중함을 몰랐을까, 왜 결혼을 미친 짓이고 필요 없다고 그렇게 무시만 했던 것일까 싶었다. 그런데 막상 여러 과정을 거쳐 다시 결혼에 이르고 나자 이삭이 쓴 글귀처럼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알기 위해 멀리 떠나야 할 때도 있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혼은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결혼을 파기하고 다시 재혼하는 다소 삽질스런 과정과 시간이 나에게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역시 나에게도 중요했던 것은 ‘결혼’이란 결과가 아니라 결혼을 다시 하기 위한 ‘과정’에 있었다. 스스로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위해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이삭이 보물이 있다는 곳에서 보초들 때문에 서성거렸던 것처럼 나이 들어 남자를 만나기 어렵다는 그 상황에서 이곳저곳 서성이고 다녔다. 그러나 보초 대장의 말을 듣고 본인의 집까지 다시 돌아가서 아궁이 밑을 파는 것처럼 나 또한 결혼이란 무엇인지 어떤 게 좋은 결혼인지 많은 사람들에게 배우고 다닌 셈이었다. 그래서 발견한 것은 결국 ‘이혼’으로 떠났지만 처음 내가 떠나왔던 ‘결혼’으로 되돌아온 셈이었다.


그러나 보물이 있는지 몰랐던 집과 보물이 있다는 걸 알고 온 집은 또 다른 집이었던 것처럼 처음 내게 결혼은 ‘미친 짓’이었지만 돌아서 다시 온 결혼은 ‘보물’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은 발견하기 쉽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가까운 곳에 있는 것도 때론 멀리 떠나야 발견할 수 있는 ‘과정’이 필요한 것처럼 그 과정이 결코 쓸데없거나 어리석은 시간이 아니라 반짝반짝 빛나는 ‘보물’ 같은 시간이었음을 알게 해 준 ‘보물’ 같은 책 ‘보물’은 나를 어른으로 만들어 준 또 하나의 그림 책임에 틀림없다.



보물.jpg

<보물>

저자: 유리 슐레비츠 출판사: 시공주니어, 2017


[보물]은 영국에서 전해오는 옛이야기를 유리 슐레비츠가 자신만의 문장과 그림으로 재구성했다고 한다. 유리 슐레비츠는 폴란드 출신이라고 하는데 4살부터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바르샤바를 탈출해서 유럽을 돌아다니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전쟁에 대한 경험부터 각 나라에 대한 문화적 경험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보물> 외에도 <내가 만난 꿈의 지도>에서는 먹을 것 대신 ‘지도’를 주는 아버지의 의미를 얘기하고, <새벽>에서는 할아버지와 손자가 맞이하는 <새벽>이란 찰나의 시간을 아름답고도 철학적으로 묘사했달까. 그림책 속에서 만나는 유리 슐레비츠의 철학적인 이야기는 그림책이 아니면 만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라서 더 매력적이다. 유리 슐레비츠는 ‘그림으로 글쓰기’란 책을 통해 어떤 식으로 그림으로 스토리 텔링이 되는지 친절히 설명해 놓아서 그림책 입문가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