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추억의 상처를 치유하는

내가 잡았어

by 북도슨트 임리나
내가 잡았어-어린 시절의 열등감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초등학교 시절,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가 그리 즐겁지는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이들이 하는 놀이에 내가 잘하는 건 거의 없었다.


일단 가장 많이 하는 고무줄놀이는 어째서인지 1절부터 시작해서 2절, 3절, 4절…. 난이도가 올라가는데 1절 이상을 잘 못했다. 그래서 나는 웬만하면 친구들이 깍두기 정도로 끼어주었다. 이 말은 아무도 나와 같은 편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외에 공기놀이는 좀 할 줄 알았지만 그것도 보통 정도였고 친구들이 현란한 기술과 복잡한 규칙을 얹게 되면 나는 또 한쪽 구석에 찌그러져야 했다.

그러니 노는 시간이 점심시간이 별로 즐거울 일이 없었다.

물론 나도 노력을 했다.


집에 와서 계단 기둥에 고무줄을 묶은 다음 동생에게 한쪽을 맡기고 연습을 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실력이 전혀 늘지 않았다.

아마 그래서 나는 초등학교 때 친구 사귀기가 힘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아이들이 즐겁게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 안에서도 역시 ‘경쟁사회’이고 또 잘하는 아이들 못 하는 아이들로 나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면 그때의 잘하고 못하고, 이기고 지는 문제는 사소한 것이라 생각되어 잊었을 뿐 그 당시에는 얼마나 중요했고 고무줄 잘하는 친구, 공기 잘하는 친구는 당연히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공부나 성적으로 학창 시절에 열등감을 가진 적은 없었지만 나는 이렇게 놀이를 못하는 열등감을 갖고 있었다.


데이비드 위즈너의 ‘내가 잡았어(I Got It!)’란 그림책은 이런 내 마음을 구구절절 담고 있다.

데이비드 위즈너는 아이디어 넘치고 또 신비한 그림으로 유명한 작가이다. 그림 없는 그림책 ‘이상한 화요일’에서 보여준 그 아름답고 신비함, 또 시간 상자에서 보여 주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드는 스토리와 비교하자면 ‘내가 잡았어’는 다소 평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전혀 평범하지 않은 그림책이었다.


어렸을 때 놀이에 끼지 못한 나의 마음을 이렇게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고 또 주인공이 공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며 내가 그렇게 분투했던 모습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한 번도 그 열등감을 극복해보지 못했다. 그렇게 놀이를 못한 나는 체육을 못하는 학생이 되었고 심지어 대학교의 교양체육시간 마저 힘겹기만 했다.

나의 열등감은 점수를 매기는 교양체육이 끝나는 동시에 종료되었을 뿐 극복하지는 못했다.


에릭슨의 발달 이론에 의하면 학창 시절은 우열감을 배우는 시기라고 한다. 이른바 잘하고 못하는 것을 경험하며 우월감도 경험하고 열등감도 경험하게 된다. 나에게 공부가 우월감이었다면 체육이나 놀이가 열등감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초등학교 시절에는 공부보다는 놀이가 더 친구들 사이에서 중요했고 심지어 인기를 얻기도 했다.


‘내가 잡았어(I Got It!)’에서 주인공도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펜스 밖에서 친구들 야구 경기를 구경하고 있다. 한 손에는 글러브를 낀 채, 본인도 친구들 사이에 끼고 싶은 것이다.

리더로 보이는 친구가 너는 저쪽 가서 공을 잡으라고 하는 것 같다.

주인공은 내가 잡겠다고 외치고 뛰어가지만 모자도 벗겨지고 신발도 벗겨지지만 공을 놓치고 만다. 친구들의 실망하는 모습이 주인공이 넘어진 옆으로 보인다. 다시 공을 잡으려 하지만 이번엔 나무에 부딪히고 만다.


그다음 다시 공을 잡으러 간다. 여기서 작가의 센스를 느낄 수 있다. 공은 크게, 주인공은 작게 그려져 있다. 잡아야 하는 공이 단순히 작은 야구공이 아니라 얼마나 큰 것인지 느끼게 해 준다.


주인공에게 잡아야 할 것은 단순히 공이 아니라 친구들과의 ‘우정’. ‘신뢰’. ‘인정’인 것이다. 그래서 더욱더 절실하게 잡고 싶다. 아니 잡아야만 한다. 공만이 아니다 친구들도 주인공보다 훨씬 크게 그려진다. 친구들 다리 사이로 친구들 팔 사이로 분주하게 뛰어다니던 주인공은 드디어 공을 잡았다.

나도 덩달아 기뻤다. 마치 내가 공을 잡은 듯이.

그리고 그 아이는 이제 펜스밖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 가운데에 앉아 있다.

아이들 세상에선 이렇게 공 하나를 잡느냐 못 잡느냐는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어른이 된 후에 잊어버렸을 뿐, 그때는 그게 참 큰 문제였고 나의 열등감을 지배하는 문제이기도 했다.


어른이 되니 좋은 점이 있기는 한 것 같다. 내가 못할 것 같은 질 것 같은 놀이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아마도 이런 어린 시절 덕분인지 나는 온갖 스포츠에는 무관심하고 즐길 줄을 모른다. 그러나 그래도 더 이상 열등감을 느낄 필요가 없는 게 나에게는 다른 할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 주인공처럼 극복하지 못한 열등감은 이렇게 뒤늦게 그림책에서 대리 만족을 하고 있다.

만약에 그림책을 보지 못했다면 어린 시절의 열등감을 극복하는 간접체험도 못했을 거라 생각하니 ‘내가 잡았어’라는 그림책이 더욱 반갑고 고맙다.


이제는 어린 시절의 열등감 또한 자연스러운 것이고 덕분에 내가 잘하는 걸 깨닫는 과정이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른이란 이렇게 그림책을 보며 자신의 열등감 또한 극복하는 간접체험의 능력도 가지는 게 아닐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렇게 어린 시절의 즐겁지 않은 추억조차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내가 잡았어!’의 주인공 손에 쥐어진 공처럼 어린 시절의 나에게 고무줄을 잘하는 재빠른 다리를 선물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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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잡았어!>

저자: 데이비드 위즈너 출판사: 시공주니어, 2011


데이비드 위즈너의 유명한 작품들이 많이 있다.

글은 없지만 그림만으로 시간과 공간의 판타지를 얘기하는 <시간 상자>가 있다면 <아기 돼지 세 마리>라는 책에서는 돼지 세 마리가 책 밖으로 뛰쳐나오는 상상력에 감탄하게 된다. 그래서 <내가 잡았어!>는 너무 현실적인 그림들이라 데이비드 위즈너의 개성이 덜 해 보일 수도 있지만 찰나의 순간들을 그려내는 데이비드 위즈너의 아이디어가 빛난다. 뉴욕타임스 북리뷰에서 “데이비드 위즈너는 우리의 꿈들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가까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는 말처럼 마치 ‘내가 꿈을 잡았어!’라고 얘기하는 것 같아서 감동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