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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도슨트 임리나 Nov 13. 2020

암 앤 암

안늙을 줄 알았지

자기야, 아버님이 오신대

그저께였다.

남편은 마치 충격적인 소식을 전하는 억양으로 말했다.


남편은 내가 부담스러울까봐 다소 과장스럽게 말하는 것 같은데 시아버지가 오신다는 것자체가 충격적이라기 보다 모처럼 잡힌 외출 스케줄을 실행할 수 없어졌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먼저 몰려왔다  


요즘 무리를 하지 않으려고 어지간하면 집근처외에는 외출을 못하고 있었는데 줌으로 듣고 있는 수업이 오프 수업을 한다는 날이라 아이까지 맡겨가며 나름 완벽한 외출 계획을 잡았던 터였다.


평소라면 어쩔 수 없더라도 남편에게는 말했을 거다.


"나 스케줄 있어. 잠깐 다녀올 테니 그 동안은 자기가 알아서 해."

그렇게 말하면 남편도 시아버지도 이해해줄 수 있는 분위기의 집안이었지만 나는 외출 수업을 포기하고 말았다.


줌으로만 수업에 만나던 사람들을 실제로 만날 수 있다는 설레임도 또 그날 도슨트로 전시를 볼 수 있다는 것도 어플로 책을 만든다는 수업도 아쉽지만......not today


시아버지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은 내가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고나서야 알았다.

우리만 수도권에 살고 나머지 남편의 가족들은 광주에 살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우리가 소식이 늦는 편인데 아마도 시아버지가 우리에게 따로 얘기를 하지 않았고 남편의 다른 형제들은 당연히 우리가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다보니 우리까지 소식이 전해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들은 소식에 의하면 시아버지는 연세가 있으시니 별다른 치료를 하지 않고 버티시는 모양이었다.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니고 약을 드시는 정도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시아버지가 며느리가 아픈데 와보신다는 말씀에 내가 집을 비울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운전을 해서 오신다는 시아버지를 남편이 말리고 srt표를 끊어드리고 남편이 역으로 마중을 나갔다.

나는 집에서 약간의 청소를 하면서 기다렸다. 대청소는 체력적으로 어려우니 거실과 욕실 청소만 했다.


남편이 시아버지를 모시고 와서 같이 점심을 먹었다.

도통 입맛이 없으시다는 말에 나도 자연스럽게 맞장구를 쳤다.


"저도 그래요. 아버님. 그래도 억지로라도 먹어야 한대요."

"그래, 너도 잘 먹어야 한다."

나는 평소 살가운 며느리는 아니지만 같은 환자(?)라서인지 자연스럽게 시아버지가 잘 드실 것 같은 음식을 앞에 놔드리거나 더 권하게 되었다.


시아버지는 내 얼굴을 보더니 그래도 안심이 된다고 하셨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이지만 내가 아프다고 하니 상태가 많이 안좋은 쪽으로 걱정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막상 만나면 전보다 살도 빠지고 얼굴도 좋아진 모습을 보며 겉으로는 좋아보인다고 한다.

어쩌면 수술 전이 더 안좋은 상태였을 것이고 지금은 수술로 체력이 떨어진 것만 뺀다면 몸상태는 좋아 보인다.

아마 그래서 직접 만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나도 시아버지를 직접 뵈니 그래도 아직은 많이 건강하신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생전처음 고속열차를 타보신 소감을 얘기하시는데 요즘엔 표가 없어서 기차 타기 어렵다고 하시는데 종이표가 있던 시절을 떠올리며 진짜 나이드신 분들은 기차를 어떻게 탈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시아버지도 호기롭게 혼자 기차를 타려고 했던 걸 얘기하시며 그나마 시누이 도움덕에 기차를 제대로 탈 수 있었다고 했다.


그래도 기차를 타고 아들을 만나러 오실 수 있다면 다행이다 싶었고 나도 그나마 이런 상태로 시아버지를 만나서 다행이다 싶었다.

그래서 어제 참석하지 못한 외출 스케줄은 많이 아쉬웠지만 '암'을 앓으며 아쉬움에 참 많이 익숙해졌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많은 것을 포기하며 그 때는 아쉬움에 익숙해지느라 발버둥을 쳤다며 이제는 아쉬움에 대한 저항감이 많이도 줄었다.


누구보다 '행동파'였던 내가 이런 변화를 겪으니 광주에서 호기롭게 운전해서 우리 집에 오겠다고 생각하셨던 시아버지가 이해도 되었다. 아마도 마음은 운전해서 지구끝까지 가실 수 있으리라 싶었다.


시아버지가 집에 계시는 동안 식사나 나머지 케어도 남편이 온전히 역할을 다했고 나는 그저 약간의 대화와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이 많았다. 마음은 약간 불편했지만 내가 시아버지를 전보다 더 이해하는 만큼 시아버지도 나를 이해하지 싶었다. 그래서인지 시아버지는 이런 내 태도에 불편한 내색도 하지 않으셨고 남편의 사업과 나의 건강에 대한 걱정만 한바탕 하고 가셨다.


하루 집에서 주무시고 서둘러 집에 가야 한다며 우리 집을 나서는 시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바랬다. 아마 시아버지도 돌아가시면서 나를 향해 같은 마음이셨을 거다.


전부터 현재에 충실하게 오늘을 산다는 마음으로 살았지만 그러기에 오늘 안되는 일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당연하지만 Today와 not today가 있다.

not today에 대한 아쉬움은 또 다른 기대감으로 오늘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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