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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도슨트 임리나 Dec 01. 2020

인싸, 아싸, 그리고 언싸

어느샌가 우리는 흔하게 인싸, 아싸란 만을 쓰고 있다.

인싸는 다들 알겠지만 '인사이더'의 줄임말이고, 아싸는 '아웃사이더'의 줄임말이다.

'인사이더(insider)'는 여러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뭔가 핵심 인물이란 느낌이라면 '아웃사이더(outsider)'는 핵심에 끼지 못하고 경계밖에 있는 사람이란 느낌이다.


어느 날 지인들과 인싸와 아싸를 얘기하다가 '언저리'에 있다는 뜻으로 '언싸'얘기가 나왔고 대화를 하던 모두는 스스로가 '언싸'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물론 나도 '언싸'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나를 위한 그림책> 출간 북 토크에서 나는 내 인생을 '이혼', '재혼', '입양', '상실(암)'이라는 키워드로 정리한 적이 있다.

키워드만 놓고 보면 내 인생은 파란만장해 보인다.

늘 내가 농담처럼 말하지만 나는 수/목 드라마 여주인공처럼 살고 싶었는데 아침 드라마 주인공이 되었다고 하는 것처럼 키워드만 보면 세상 모든 일은 다 겪고 산 사람 같다.


처음 결혼을 한 게 29살이었으니 이혼부터 시작하자면 저 키워드들은 대략 내가 20년 가까이 겪어낸 일들이다.


이혼을 했을 때가 내 인생에 있어서 처음 겪는 큰 정신적 고통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재혼을 했고 재혼을 하면서 나는 전과 다른 사람이 되었을 정도로 많은 변화를 겪었고 또 입양을 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보았고 암에 걸려 육체의 고통도 겪어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 정신과 몸이 건강한 이유는 내가 '언싸'인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혼을 경험한 덕에 많은 사람들의 부부관계 얘기부터 이혼 얘기 등을 듣게 되는데 정말 막장 드라마 같은 일들이 많아서 내가 감히 그들 앞에서 '이혼'을 꺼낼 수가 없었다.

남편의 외도, 남편의 폭력, 아내의 불륜, 직장을 잃고 집안이 풍비박산 나는 이혼을 보며 나는 이혼에 있어서 '언싸'였다는 생각이 든다.

별거를 했었고, 이혼 서류를 두 번이나 접수하는 에피소드 등은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약과다.


재혼도 마찬가지이다. 나를 고통스럽게 했던 이혼의 상처에서 벗어나 다시 결혼을 하기로 결심하고 3년이 걸려 재혼을 했는데 그 과정이 나름 힘들고 길다고 생각했는데 이혼하지 1년도 안되어 재혼을 하는 인싸 같은 사람도 있지만  막상 결혼을 하려고 해도 10년이 넘도록 못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역시나 나는 '언싸'다.


입양도 그렇다. 나는 정말 남편이 제안을 하길래 '한번 해보자'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입양 모임을 가보니 아이를 갖기 위해 시험관 시술을 17번이나 하거나 아니면 아이를 잃은 경험을 가진 부부이거나 했다  그들의 사연을 들으며 나는 역시나 입양에서도 언저리에 있나 보다 싶었다. 남들이 구구절절한 사연을 얘기하는 입양의 사연 따위는 없으니 '언싸'인 것 같다.


올해 암이 걸렸을 때, 내 인생이 갑자기 비극이 되는 듯했다. 정말 아침드라마처럼 이혼과 재혼에 입양에 암까지 걸리나 싶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침 드마라는 해피엔딩이 아닌가?

정말 아침드라마처럼 해피엔딩 같은 결론처럼 2기 b부터 항암치료가 필수라는데 딱 2기 a라 항암치료가 필요 없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언싸'라서 감사하단 생각을 했다  


키워드만 보면 파란만장해 보이지만 막상 그 안을 들여다보면 '언싸'라서 내가 지금 마음과 몸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지나온 어려운 일들에 온 몸을 담근 게 아니라 발 한 짝만 담갔던 탓에 지금 이렇게 글도 쓸 수 있는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인생의 어려움을 온몸으로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느낌으로 글을 쓴다. 아주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그래도 발 한 짝 담가 본 사람으로서 그 고통을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으니 말이다.


오늘은 문득 나에게 자신의 고충을 털어놓았던 많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부디 행복하기를.

난 ‘언싸’라 큰 불행을 비켜가서 행복한 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내 앞에서 스스럼없이 자신의 고통을 털어놓고 내가 공감할 수 있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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