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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도슨트 임리나 Dec 16. 2020

경험만이 알려주는 디테일

수술 후, 6개월이 지났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6개월이다.

왜냐면 다들 6개월쯤 지나면 정상적으로 돌아온다고 했었기에....


과연 지금은?

그 말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어느 정도는 정상적이기도 하고 어느 정도는 비정상적이다.


나의 주 증상인 시도 때도 없이 화장실을 가야 하는 상황이 많이 나이진 듯 하지만 여전히 예전 같지는 않다. 기억에도 없는 어린 시절의 배변 훈련이 이랬을까 싶은데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배설의 본능을 조절하는 연습을 하는 그런 기분이다.


그런데 이렇게 막상 '수술'이란 걸 경험하고 보니(살을 째고 몸속의 무언가를 도려낸 경험) 출산을 한 여자들이 이해 가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출산의 경험이 없다.

출산 없이 육아로 건너뛴 셈으로 육아를 하면서 충분히 엄마의 애로사항을 느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경험으로 내가 출산의 경험이 없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그건 바로 '경험만이 알려주는 디테일'때문이었다.


처음에 수술을 했을 때는 '살아만 있으면 된다.'라고 생각했다. 살기만 한다면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파우스트처럼 말이다.

그런데 '살아만 있는' 결과가 전혀 기쁘지 않다는 걸 알았다.

수술 후 한 달쯤 지나 복강경 수술을 한 나의 배에 남아 있는 수술 자국이 참 맘에 안 들었다. 평소에도 입지 않았지만 괜히 비키니도 앞으로 못 입을 거라는 심통이 났다.

요양병원에서 이런 나의 감정을 편안한 맘으로 얘기했더니 개복 수술한 언니가 "내 배 보여줘?" 해서 웃고 넘어간 적이 있지만 역시나 내 문제가 되면 사람은 심각해지기 마련이다.

여전히 난 그 수술 자국이 싫다.

이런 게 경험한 자만이 알 수 있는 디테일이 아닐까 싶다.


상담을 하다 보면 출산의 경험이 있는데 새롭게 연애를 하는 남자에게 말하나 마나 고민하는 여자들도 있다. 그때 문제가 되는 건 제왕절개 흉터이고 그것을 숨길 수도 없지만 또 자기 입으로 말해야 하는 괴로운 현실도 싫다는 그 마음을 공감해주면서도 이제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나는 행복한 육아를 했던 것 같다. 왜냐면 출산이란 신체적인 변화 없이 아이를 키운다는 심리적 변화만이 있었던 것이니까.

엄마들의 다소 움츠러드는 마음이 아이를 키우는 상황에서 오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임신 출산을 통해 겪었던 신체적 변화가 어떤 결과를 남겼을까 싶었다.

체중 증가나 추위에 민감해진다거나 손발이 저린다거나 등등.

내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 주는 심리적 변화를 그저 '그럴 수 있다’ 고만한다는 건 제대로 된 이해가 부족한 건 아닐까.


여자들이 출산으로 인해 겪는 신체적 변화가 그저 당연함으로 생각되고 또 출산 후 체증이 증가한다거나 하는 문제를 개인 관리가 부족한 탓이라고만 본다면 그건 너무 가혹한 말 같다.

출산도 6개월이면 몸이 회복된다고 말한다.

별 지장 없이 사회생활이 가능하면 '회복'이라고 말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인간은 스스로에 대해 ‘별 지장 없이’에 만족하기는 어렵다  


출산을 하느라 일을 쉬어서 공백 기간 때문에 자신감이 없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할 수 있는 체력에 대한 걱정 또한 한 부분이 될 수도 있었다. 또 예전과 다른 외모도 말이다  그걸 단순히 외모에나 신경 쓰는 어리석은 여자로 치부하는 것도 이해가 부족하다  

옛 어른들이 애를 낳고도 밭을 갈았다는 그 말은 정말 누군가 한 명의 예를 전설처럼 써먹으며 정말 많은 여자들의 출산의 어려움이나 출산 후의 변화를 무시하는 건 아닐까.

또 ‘출산 후 여전한 미모’라고 나오는 연예인의 사진 한 장은 그 뒤에 가려진 커다란 자본의 음모는 숨긴 채 보통 여자들을 또 한 번 열등감에 시달리게 하는 건 아닐까  


사람에게 신체적 변화는 참 큰 영향을 미친다. 거기다 몸이 불편해진다는 건 심리적으로 영향을 안 미칠래야 안 미칠 수 없다.

그래서 나도 수술 전보다 자꾸만 마음이 위축된다.

연예인처럼 외부활동으로 바쁜 일정들을 소화하는 사람을 보면 내게 다시 올 수 없는 날들이 되는 것만 같아 아쉽고 또 그렇다고 집에서만 휴식을 취하자니 내 인생이 아깝다.


하지만 전과 다른 상황에서 또 새로운 시작을 하면서 출산과 육아를 겪으면서 새롭게 자신의 길을 찾으려는 엄마들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세상엔 경험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경험해야지만 알 수 있는 디테일은 반드시 있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방을 한 번에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천천히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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