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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도슨트 임리나 Jan 17. 2021

어느 멋진 일요일(6-마지막)

피오나의 단편소설

해가 저물어 일요일이 가는 것이 아쉽듯이 서진과 헤어져야 하는 것도 아쉬웠다.


나는 이렇게 돌아갈 자리가 정해져 있는 사람이고 앞으로의 인생도 정해져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짧은 일요일의 일탈은 이렇게 끝나가는 걸까....

아침에 하루에 대한 기대로 느꼈던 설레임 그리고 서진을 만나 과거를 떠올리며 느꼈던 잠깐의 두근거림....

너무나 소중한 느낌이었다.


이제 나는 일요일도 없이 살아야겠지...

나에게 그래도 한 순간 '어느 멋진 일요일'이 있었다고 생각하며....

내가 먼저 이제 그만 일어나야 한다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미안해....나 한 달 후에 결혼해..."

서진이 한 말에 나는 가슴이 내려 앉는 것 같았다.


'결혼이라...'


서진과 하루를 보내면서 애써 옛사랑의 두근거림을 가라앉히고 있던 내게 그 말은 결국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고 있었다.

이기적인 마음일까....

내가 결혼을 했으면서도 서진이 결혼하리라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 만약 한다면 그것은 아주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축하한다고 해야 할지, 누구랑 하냐고 물어야 할지..아니면 말려야 할지...

그런데 왜 서진은 미안하다고 하면서 결혼한다고 했을까...


"결혼하기 전에 널 한번 만난다 생각했는데....막상 널 만나고 보니....내가 결혼하는 게 너한테 미안하단 생각이 든다..."


나는 서진의 말을 이해할 것 같았다. 서진을 떠나 남편과 결혼할 때 서진에게 웬지모를 미안함이 있었다.

그 미안함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축하한다는 말은 못하겠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오년 전에 서진은 내가 결혼하기 위해 한국에 돌아올 때 분명 축하의 말을 했던 것 같은데....


"나도 억지로 축하한다는 말 듣고 싶지 않아..."

하루 종일 예전 추억을 회상하며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던 것과 달리 씁쓸하고 우울한 분위기로 바뀌고 있었다.


"그 때 내가 스물세살이었지. 세월이 흘러 이제 그 때 네 나이를 지나고 보니....그런 생각이 들어. 그 때 우리가 얼마나 생각이 모자랐나...하는 생각....왜 그 때 인생이 다 끝난 것처럼 넌 결혼은 꼭 해야하고 나는 연상인 너와 결혼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어. 이렇게 우리가 5년만에라도 만날 수 있는데 말야..."


그랬다...우리는 바닷가에서 남의 눈치 안보고 마음껏 사랑하고 싶다고 말했었지만 결국 우리는 스스로를 가두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사랑한다면 약혼자는 무시하고 또 나이 차이도 극복하고 서로 함께 하려고 노력해야했던 것이다.

나는 그 때 여행지에서 잠깐 만난 남자와의 로맨틱한 만남은 진실한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서진에게 온통 빠져 있으면서도 이것은 순간의 감정일 뿐이라고....

다시 약혼자에게 돌아왔을 때 서진을 그리워하며 억지로 잊으려 노력하다가 일상에 파묻혀 지내면서도 그 때 서진을 잡지 않은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노래 한곡으로 인해 서진에 대한 마음은 다시 피어 올랐고 또 이렇게 서진을 만나면서 예전의 설레임으로 돌아가는 자신을 보며 그 때 내가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 진짜 사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사랑이겠지만....

지금이라면 약혼자는 버리고 서진을 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서진은 스물세살의 어린아이도 아니고

나도 인생을 살아가며 이십대에 만난 사람이 마지막 사랑일거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사랑은 인생에 어느 순간에 찾아오는지 아무도 모른다. 십대일 수도 있고 아니면 죽을 때까지 진정 사랑하는 사람을 못 만날 수도 있다.


"그 여자 사랑해?"


고작 내가 서진에게 물을 수 있는 것은 그것 뿐이었다. 아니 그걸 꼭 물어보고 싶었다.

내가 아직도 사랑이라고 믿고 있는 서진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지 그것이 궁금했다.

그 여자랑 인생의 마지막 달나라 여행을 가고 싶은 건지...


"...."


"네가 전에 말했던 것처럼 달나라 여행을 같이 가고 싶은 사람이냐고?"


"글세...인생은 길 거야. 지금 같이 있다고 해도 인생의 마지막엔 누군가와 같이 있을 수 있는지는 모를 것 같아. 결혼이란 것이 사랑을 묶어두는 게 아니니까..."


서진은 모든 해답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일까...결혼이란 것 그 자체가 사랑을 보존해주는 그릇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그렇다면 왜 결혼을 하는 걸까....


"나...지금은 확실하게 후회한다고 말할 수 있어. 그 때 널 잡지 않은 거...."


나는 이제 서진을 마지막으로 만나는 것이라 생각하며 솔직하고 싶었다. 그 때 내가 약혼자에게 떠나는 것으로 서진에게 상처를 준 것을 잘못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냥...너 떠나고....만난 여자인데....널 많이 닮았어...그걸로 만족하고 살자고 생각했는데...."


누구를 원망할 수 있을까...

우리의 잘못이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서로를 잡지 않았던....

그래서 앞으로 이렇게 어긋난 채 평생을 살아야할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가 기대할 것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의 달나라 여행을 누구와 할 것인가....라는 것 뿐인가...

인생은 늘 사랑보다 길고 끝없는 혼란에 빠지게 한다.


나는 아주 이기적이고 현실적인 생각이 들었다.

인생의 마지막 여행 같은 것을 꿈꾸며 현실을 견디고 싶지 않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사랑하는 사람과 달나라 여행을 가고 싶다.

아주 먼 미래같은 것은 모르는 일이다. 그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내가 어떻게 될지...그런 불확실한 미래에 내 현재를 저당잡히고 싶지 않다....

오늘 서진을 만난 것을 '어느 멋진 일요일'이었다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며 평생 늙고 싶지 않았다.

내가 원했던 것은 단순히 옛사랑 서진을 만나 과거를 추억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그리고 서진과 다시 사랑을 시작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

일요일마저 자유롭지 못한 내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제 가야지...."

나는 그런 생각이 들자 서진과 이제 헤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예전에 사랑을 잡지 못한 것도 서진의 잘못이 아니라 내 잘못이었다는 생각했다.


"그래....정연아...사랑했다. 하지만 우리가 가는 길이 다른가 보다..."

서진은 오년 전에 했던 말과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다.

한번 잡지 못한 사랑은 이렇게 계속 어긋나며 서로의 인생을 슬프게 만들고 있는지도 몰랐다.

마지막으로 서진은 내게 악수를 건넸다. 나는 서진의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만나줘서 고마워..."

사랑을 찾을 순 없었다고 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서진을 가까운 지하철역에 내려주고 있는 힘껏 엑셀을 밟았다.

남쪽으로 계속 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남쪽으로 달리다 보면 다시 멜번에 갈 수도 있고 아니면 아예 지구밖으로 나가 달나라로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p.s: 무려 17년 전에 쓴 소설입니다  그땐 애가 없었을 땐데 어쩌면 애엄마의 마음을 이렇게 잘 아냐는 평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처럼 모두가 일요일도 없이 지내는 이 때 ‘일요일’이란 단어가 주는 울림 때문에 옮겨 봅니다  

https://youtu.be/MeLVCeEry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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