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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도슨트 임리나 Apr 01. 2021

인어가 되고 싶은 남자 아이의 이야기

인어를 믿나요?

"때로는 적절한 시기가 되기 전까진 책이 우리를 찾아 오지 않는 법이죠." 책 <섬에 있는 서점>에 나오는 구절이다.

<인어를 믿나요?>라는 책이 나에게 찾아 오기까지는 참 오래 걸렸다. 아니 내가 이 책의 '진가'를 알아보는데 오래 걸렸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이미 제목도 알고 있고, 표지만 해도 수없이 봤고 사람들의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심지어 그림책 수업에서 이 책의 설명을 들었지만 나는 내 스스로 이 책을 펼쳐 읽어볼 생각을 안했다.

그건 이미 이 책이 '다양성'을 말한다는 설명 때문이었는데 그 설명이 이 책을 마치 도덕교과서처럼 느끼게 했고 '다양성'을 얘기하는 건 알겠지만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지? 싶었고 난 이미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람이니 굳이 읽을 필요가 없다는 오만이었던 것 같다.


내가 이 책을 내 스스로 서가에서 꺼내 읽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몇 십년만에 다시 만나게 된 사촌 동생 때문이었다.


이 책의 원제는 "Julian is a mermaid"이다. 즉, "줄리앙은 인어다"라는 뜻인데 표지를 봐도 알 수 있듯이 한껏 인어처럼 꾸미고 서 있는 '남자 아이'가 주인공 줄리앙이다.

줄리앙은 인어 공주 그림책을 읽으며 인어가 되고 싶다고 할머니에게 말한다. 그토록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인어의 이야기를 읽으며 사람인 줄리앙은 인어가 되고 싶어하다니 그것도 남자 아이가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인어는 '여자'로 치환된다.여자가 되고 싶어하는 남자 아이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 그림책은 '다양성'을 이야기 한다고 하는데 나는 좀 다른 생각이다.

인어 공주 이야기에 조금 더 대입해 보고 싶었다.


인어 공주가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데 '그게 과연 가능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지만 픽션이니까 마녀에게 목소리를 팔아 다리를 얻고 사람이 된다. 하지만 결국 그 댓가는 잔인하다. 물거품이 된다.(디즈니 영화의 엔딩은 왕자와 결혼하는 해피엔딩이지만) 그런데 "인어를 믿나요?"에서 줄리앙은 인어가 되고 싶어하는데 마치 인어가 사람이 되는 것과 맞먹는 정도로 남자 아이가 여자 아이가 된다는 것도 불가능해 보인다. 혹자는 '차라리 인어가 사람이 되는 게 낫지 남자가 여자가 된다고?'라고 할 지도 모른다.

'인어공주'는 나쁜 마녀에게 목소리를 팔아 다리를 얻지만 '줄리앙'의 할머니는 줄리앙이 인어가 되고 싶다는 것을 지지해주고 인어 축제(mermaid parade)를 데려간다. 마치 더 큰 세상을 보라는 듯이 말이다. 이런 할머니의 행동이 "인어공주"에서 어렵게 사람이 되는 것보다 더 어려운 남자가 여자 되기를 지지해 주고 인정하는 힘이 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내 사촌동생은 게이다. 하지만 가족내에선 오픈된 적은 없지만 나는 어느 정도는 감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촌동생이 스스로 오픈하고 대화를 나누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오만함으로 읽지 않았던 그림책 "인어를 믿나요?"를 떠올렸고 내 스스로 서가에서 꺼내어 다시 읽어보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내 손으로 한 폐이지 한 폐이지 넘기며 이제야 나에게 다가온다는 느낌이 들었다. 인어를 동경하는 줄리앙, 그런 줄리앙을 인정하는 할머니. 물론 그림책에선 쉽다. 그러나 그림책 밖에선 어떨까?


나는 게이 친구도 있었기에 그런 그림책(표현이 그렇지만)은 보지 않아도 이미 마음이 열려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가까운 사촌동생과 대화를 하다 보니 잔뜩 엉킨 실타래를 받아든 느낌이 들었다. 사촌동생의 아버지와 우리 어머니는 형제다. 그러니 사촌 동생을 둘러싼 환경을 더 세밀히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사촌동생이 게이인 걸 숨기는 삼촌의 모습도 동시에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왜 삼촌은 줄리앙의 할머니처럼 인정해주지 못하는 걸까? 또 사촌 동생은 줄리앙처럼 어린 시절에 자신의 성향을 자연스레 드러낼 수 있었을까? 단순히 내가 열린 마음으로 인정한다로 끝나지 않는 복잡한 문제들을 알게 되었다.

어쨌든 줄리앙은 인어가 되었고 할머니의 도움을 받았다.

사촌동생은 게이이지만 아무도 지지자가 되어 주지는 못한 것 같다.

인어공주는 목소리를 팔아 어렵게 사람이 되었지만 줄리앙은 인어가 되었다. 목소리를 팔지 않아도!

뒤늦게 나마 사촌동생에게 내가 도움이 된다면 줄리앙의 할머니처럼 인정하고 지지한다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

“네가 게이라 하더라도 동생인 건 변함이 없다”고 말이다  


p.s: 오늘 ‘그것이 알고 싶다 보고 덧붙입니다  주변에 성소수자가 없다고 생각하는  당신이 호의적이지 않아 그들이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합니다  

p.s: 이 글을 쓸 때까지만 해도 게이와 트랜스젠더 차이조차 몰랐던 제게 시간을 내서 따뜻한 설명을 해주신 캔디님께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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