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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도슨트 임리나 Apr 22. 2021

거미와 엄마-루이스 부르주아

거미 엄마, 마망 -루이스 부르주아

누군가 거미줄을 망가뜨려도 거미는 화내지 않아. 실을 뽑아 망가진 곳을 고치지.


핸드폰을 열어 사진에 '도쿄'를 넣고 검색해본다.

검색 항목 아래에 나열된 사진들 중에 2019년 9월 14일 날짜의 사진을 보다 보니

"있다. 있어!!'

이 사진은 딸 아이와 여행을 갔던 2019년에 찍은 것이지만 내가 처음 거미상을 본 때는 일본 생활을 하던 이십년 전쯤이었다.

그 때 집에서 롯폰기가 가까워 자주 쇼핑도 하고 영화관도 있어서 자주 다니며 거미상을 지나치곤 했다.

거미상은 지하철에서 나와 지상으로 올라오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으로 나에게는 지상으로 나왔다는 지표가 되는 정도였다  

나는 그 거미상이 그저 쇼핑몰에 있는 장식품 정도라고 생각했고 이 거미상이 왜 여기 있지? 라는 단순한 의문을 가졌고 사람들이 그곳에서 무수히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면서도 거미가 신기해서 찍나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소 보기 좋지도 않은 그러나 너무 커서 사진 찍기가 어려운 그 거미상을 카메라에 담으려 해 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무수히 스쳤던 시간을 뒤로 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우연히 듣게 되었던 현대미술의 강의에서 내가 모르고 스쳤던 그 거미상이 '미술품'이었고 엄마라는 뜻의 ‘마망'이란 작품명도 갖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 순간 얼마나 내가 무식했었나 반성도 했다.

그제서야 왜 사람들이 그 거미상을 지날 때마다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했는지 알았다.

그래서 2019년에 다시 방문했을 때 마망 사진을 찍고 또 이름표까지 찍어놓았던 것 같다.(솔직히 사진을 찾아보고야 알았다. 그때 내가 찍었다는 것도 말이다.)

이렇게 옛날 기억을 떠올리고 또 사진까지 찾아보게 된 이유는 '거미 엄마, 마망 루이스 부르주아'라는 책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롯폰기에 있던 그 거미상 <마망>은 '루이스 부르주아'작품이고 루이스 부르주아는 어렸을 때 태피스트리(천을 수선하는 직업)인 어머니와 함께 지내며 실을 짜고 있는 엄마를 보고 자랐고 자신도 천을 짜는 법을 배운다  대학에 진학 해 수학을 공부하던 중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예술의 길을 들어선다  그리고 그녀는 엄마를 떠올리며 거미줄을 짜는 거미를 떠올렸고 거미 조각상을 만든다  

지금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마망의 조각상에는 거미의 알이 들어 있다. 알을 품고 있는 거미 엄마, '마망'인 것이다.


루이스에게 천을 짜는 일은 낱낱을 하나로 완성하는 일이었어요.


책에 나오는 구절이다. 실로 천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본 경험이 없는 나는 '짠다'라는 게 어떤 의미일까 생각하다 이 구절을 보며 '하나로 완성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된다  우리 인생도 실을 짜는 일처럼 매일매일 실로 무언가를 짜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짜는 동안은 모른다. 어떤 완성품이 될지는 말이다.

나는 오늘도 열심히 무언가를 짰다  완성품이 무엇이 될까?

일단 오늘 나의 과거, 마망, 그림책으로 무언가를 하나 짜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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