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저녁>>을 읽고
푸시 광고가 잠든 핸드폰을 깨우고, 가끔 아니 자주 잠든 나의 쇼핑 의식을 깨운다.
광고를 클릭해서 구매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어도 광고 내용은 호기심 많은 나를 겨냥한 경우가 참 많다.
그래, 나 호구다.
이럴 때면 나를 탓하지 말고 요즘의 계획적이고 세련된 마케팅 탓이라고 해버리고 싶다.
그런데 정말, 너무나 유명한 대형 마트 광고에서 난 깜짝 놀랄 표현을 발견했다.
h마트의 모바일 광고 캡쳐
보리. 먹고. 자란. 캐나다. 삼겹살/목심
내가 돼지에 관한 글을 쓰고 있어서인지 모르지만
어떻게 삼겹살에 직접 '자랐다'는 표현을 쓸 수 있을까?
보리 먹고 자란 건 '돼지'가 맞는데...
어느 새 우리 일상에서 돼지는 사라지고 삼겹살만 남은 것이 맞나보다.
이 카피에는 정말 좋은 말이 다 들어 있다.
사료를 먹지 않고 보리를 먹었고, 캐나다라면 한국에서 농장에서보다 자유롭게 컸을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런데 어찌됐든 그건 돼지를 위한 게 아니고 최종의 고기인 '삼겹살'을 위한 거였다니.....
이 광고를 보고 나니 떠오르는 그림책이 있었다.
사라진 저녁저자권정민출판창비발매2022.11.18.
사람들은 배달 음식을 시킨다.
너무나 바쁘게 음식을 배달하는 사람들, 또 그러기 위해서는 바쁘게 요리해야 하는 사람들.
그 많은 집에 요리를 만들어서 배달하기에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파트 앞에 '돼지'가 배달된다.
사람들이 시킨 메뉴가 '족발', '감자탕', '돈까스', '보쌈', '김치찌개' 등이었기에
돼지 한 마리를 통째로 배달된 것이다.
사람들은 황당해 하지만, 배가 고프니 이 돼지를 잡아야 했다.
그래서 서로 아이디어를 내고, 역할을 분담하고, 도구도 산다.
과연 이 사람들은 돼지를 잡아서 먹었을까?
언젠가부터 우리의 머릿 속에서 요리는 '돼지'는 빠져 있고 고기만 남게 된 것 같다.
그리고 그 고기의 등급은 돼지가 아닌 인간을 위한 등급이 매겨진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쯤에서 또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좋은 등급의 고기를 먹어서 생긴 인간의 이득은 과연 돼지에게 어떻게 돌아가는 걸까?
돼지는 인간에게 고기를 제공하고 무엇을 얻는 것일까?
먹이 사슬 최상위 인간이 동물을 위하게 되는 방법은 죽어서 땅에 묻히는 것 뿐일까.
이쯤되면 '아낌 없이 주는 나무'가 아니라 '아낌 없이 주는 돼지'가 맞는 것 같다.
보리를 먹고 캐나다에서 자랐는데 머나먼 타국, 한국까지 잡혀와 사람들의 영양에 일조하고 있는 돼지는
얼마나 숭고한가.
그래서 나는 차마 그 삼겹살을 살 수 없었다.
숭고하다고 느끼는 순간 먹을 수가 없었다.
이런 마음을 적으면서 나는 또 삼겹살을 먹을 것이다.
나는 이율배반적인 인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