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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도슨트 임리나 Feb 04. 2024

피해자를 기억하렵니다

며칠 전 전청조를 검색했다.

전청조가 처음 기사화 됐을 때는 온 나라가 시끌시끌하더니 이제는 또 잠잠해졌다.

내가 전청조를 검색한 이유는 죄값의 결과가 궁금해서였다.


언론은 화제의 중심으로 움직이기에 처음 전청조 사건이 터졌을 때는 앞다투어 보도를 하더니 사람들의 관심이 식는다 싶으면 그 결과에 대해서는 잘 보도하지 않을 때가 많다.


범죄자는 나쁜 일을 했지만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주목'자체가 스타를 만드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우려스러울 때가 많다.


정작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건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피해자들은 이름도 노출되지 않고 방송에도 나오지 않는다.

나오더라도 익명이나 얼굴과 목소리를 변조해서 나온다.

그래서 우리는 피해자를 기억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전청조 대신에 몇 천 혹은 몇 억씩 피해를 본 피해자들을 떠올려야 한다.

혹자는 그럴지도 모른다.

그만한 돈이 있으니 털린 거 아니냐고.

아니다.

대부분의 사기꾼들은 명의를 빌려 대출로 사기를 치고 결국 대출을 갚는 건 피해자의 몫이 된다.

이름이 자기 이름이니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전청조가 어려서인지 사기를 당한 사람들 중엔 이십대도 많았다고 한다.

이십대에 큰 빚을 진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전청조가 징역 15년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덧붙여진 기사에서 중형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사기를 쳤으니 돈으로 계산해보자.

전청조 피해금액이 댸략 30억으로 보도되었다.

그러면 징역 15년을 그대로 산다고 해도 1년에 2억이다.

대한 민국 사람 중에 1년에 2억을 버는 사람이 과연 몇 퍼센트나 될까.


전청조는 이미 남의 돈으로 호위호식을 했다. 

피해자들 중에 전청조만큼 누렸던 사람이 있을까?


사람들은 전청조를 이제는 잊었을지 모른다.

혹여 기사를 보더라도 15년 중형이라고 생각하고 죄값을 받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과연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 기사를 보며 시원할까?

오늘도 밀린 대출 이자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지 않을까?


언론은 전청조란 이름으로 기사를 쓰며 피해자를 지운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전청조 이름 세 글자가 아니라 이름 모를 피해자라는 세 글자다.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전청조 사건에 대한 어떤 글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재판 결과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사회의 엘리트인 판사들이 오죽 잘 알아서 판결을 했을까 싶지만 나는 자꾸만 30억 15년이란 계산만 되고 그리고 피해액도 돌려받지 못할 피해자들이 떠오른다.


이 글에도 전청조나 사기라는 태그를 달지 않을 것이며, 제목에도 전청조를 쓰지 않을 것이다.


나는 전청조가 아니라 피해자를 기억하려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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