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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도슨트 임리나 Oct 15. 2023

작가가 전시를 보는 방법: 가장 진지한 고백(장욱진)

사람들이 미술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미술 전시를 관람하는 사람들도 정말 많아졌다.

얼마 전에 다녀온 '거장들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영국내셔널갤러리 명화전)'은 정말 어렵게 예약을 해서 갔는데 인원 제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많아서 눈치껏 그림앞 1열을 사수하는 신경전으로 작품을 감상해야 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미술을 감상하는데 과연 어떤 시각으로 감상하고 있을까?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유명하듯이 지식으로 접한 그림을 직접 눈으로 보고 있는지 아니면 남들이 유명하다고 하니까 나도 한번 보고 싶은 마음으로 감상을 하고 있는지...정말 그림 그 자체만으로도 감동이 느껴지는 건지...


사람들은 '영국국립박물관' 작품들이 왔다고 하고 보러 간다고 하고, 얼마 전 '에드워드 호퍼: 길위에서'는 호퍼를 보고 왔다고 했다.

내가 며칠 전에 다녀온 '가장 진지한 고백-장욱진 회고전'도 사람들은 장욱진 전시회를 한다고 말했었다.


물론 우리는 유명 예술가의 작품을 보러 전시를 간다.

그러나 전시의 제목과 구성을 살펴 보면 훨씬 더 작품을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다.


나는 전시를 볼 때 '제목', '전시의 구성'을 가이드 삼아 보려고 한다.

'가장 진지한 고백-장욱진 회고전'으로 예를 들어 설명한다.


장욱진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한 분이다. 김환기, 이중섭, 박수근, 유영국 등과 함께 2세대 서양화가, 1세대 모더니스트이다.


그럼 우리는 이번 전시는 어떻게 보아야할 것인가?


우선 제목을 보자.

'가장 진지한 고백'이란 제목과 부제로 '장욱진 회고전'이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고백'인 것이다.

그리고 고백이란 주제에 따라 소주제가 4개로 나뉘어진다.

소주제들의 제목은 첫번째 고백, 두번째 고백, 세번째 고백, 네번째 고백이고 각각 1,2,3,4 전시실로 되어 있다.

전시회에 가면 이렇듯 '순서'가 있는데 왜 순서를 지켜봐야하는지 꼭 이 순서대로 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순서가 단순히 작품을 걸어놓은 순서가 아니라 어떤 주제로 짜여져 있는 것이라면 그 순서도 감상의 중요한 과정이 된다.


이번 '가장 진지한 고백'의 전시는 1층과 2층으로 되어 있는데 1층에는 1,4 전시실이 있고 2층에는 2,3 전시실이 있다.

관람 동선은 1층에서 1전시실을 보고 2층으로 올라가 2,3을 보고 1층으로 다시 내려와서 4전시실로 짜여져 있다. 그러나 1층은 1,4는 시기적으로 나눈 것이고 2,3전시실은 주제로 나뉜다.


1 전시실은 초창기 작품, 4 전시실은 말년의 작품, 2전시실은 그림의 주제인 까치와 나무등. 3전시실은 불교와 목판화 작품 등이 있다.


나는 전시에서 '전시의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전시 팜플렛의 글들도 이 글들이 그림을 감상하는데 정말 도움이 된다.

"그림처럼 정확한 나의 분신은 없다.
난 나의 그림에 나를 고백하고 나를 녹여서 넣는다.
나를 다 드러내고, 발산하는 그림처럼 정확한 놈도 없다."
-장욱진, <마을>, <조선일보>1973. 12.8



이 글을 보면 전시의 제목이 왜 '가장 진지한 고백'이 되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전시를 보면서 장욱진의 그림을 보는 의미도 있지만 장욱진이 던져주는 화두 '고백'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나의 '고백'에 대해서도.


마침 나는 아침 '글쓰기 수업'에서 수강생들과 '나를 드러내는 글쓰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다.

수강생들의 고민은(나도 그렇지만) '나를 드러내고 싶으면서도 어떻게 드러내야 할지' 라는 것이다.

그 고민에 대한 해답을 이번 전시에서 찾는다면 '세 번째 고백'이지 않을까 싶다.


자기의 생활은 자기만이 하며
자기의 생활을 그 누구의
생활과도 비교하지도 않았으며
때문에 창작 생활 이외에는
쓸데없는 부담밖에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승려가 속세를 버렸다고 해서 생활을 버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처님과 함께하여
그 뜻을 펴고자 하려는
또 하나의 생활이 책임 지워진 것과 같이
예술도 그렇듯 사는 방식임에
지나지 않으리라"
- 장옥진, <예술과 생활>, <<신동아>>, 1967.6.


나는 내가 알고 있기에 내 생활을 누구하고도 비교하지 않으며 나 자신을 이해하는 기회를 갖기 위해 나를 드러내는 글쓰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닐까.


나는 좋은 작품을 만나기 위해 전시회를 가지만, 그 전시회 속에서 만나는 '글'도 참 좋아한다.

이렇게 제목과 구성을 이해하면서 전시를 감상한다면

단순히 장욱진의 그림을 보고 온 것이 아니라 장욱진의 '가장 진지한 고백'을 보고 온 것이 된다.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그림을 감상하고, 전시해설(도슨트)을 들으며 이렇게 2번 전시회장을 돌고 왔다.

다리는 아프지만, 집에 돌아올 길이 걱정이었지만 그래도 그 시간 만큼 '예술'에 젖어 있어 좋았다. 


p.s: 핸드폰 사진에는 그림 사진도 있는데 글을 쓰다 보니 어찌 '글' 사진만 올리게 되었네요. 작가가 전시회를 를 보는 방법에 충실한 내용을 쓰다보니.



 

 계단 벽의 이 그림도 예뻐서 찍어봄(장욱진 그림 중에 따 온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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