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

아이를 키우며 버려야할 것들 BBvsAB

by 북도슨트 임리나


지난 번 아이를 버려야 할 것들-화장실 문닫기 편에서

AB의 애 엄마들은 대 공감을 하고

BB시절의 사람들은 깜짝 놀란 모양이었다.

저렇게까지 불가능한 거구나...싶었나보다.


물론 나도 그랬다.


애가 생기면 고차원적인 '일'이나 못하는 건 줄 알았다.

먹고 자고 화장실 가는 일마저 이렇게 제약을 받을 줄은 몰랐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인간의 기본 욕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이번에는 '샤워'이다.


심지어 목욕도 아닌 샤워이다.

애가 생기면 당연히 여유롭게 목욕은 못할 거라 생각했지만

간단한 샤워마저 못할까 싶었다.


그런데 애가 생기고 나니 샤워조차도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BB시절의 샤워는 어떠했나.

온갖 목욕용품, 샴푸, 샴푸바, 린스, 콘디셔너, 헤어팩, 바디 샴푸, 바디 스크럽....

다 갖추어 놓고 스폰지 마저도 내 취향이 있다며 골라서 충분히 거품을 내고

정성스레 샤워를 했다.

그리고 내가 샤워 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아이가 생기고 나니 샤워 시간을 내기도 어려울 뿐더러 짧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아이와 둘이 있을 때는 좀처럼 짬을 내기 어렵다.

만약에 옷을 다 벗고 샤워하는 중에 애가 울기라도 하면 어쩌랴....

물기를 닦고 옷을 입고 나가는 시간마저 오래 걸릴 것 같았다.

애 엄마라면 물기를 묻힌 채로 뛰어나간 적이 있을 것이다.

제발 나만이 아니라고 해줘~~


그러다가 애가 기어다니기 시작하면 애와 함께 있는 시간에는 언감생신 샤워는 꿈도 못꾼다.

샤워하는 동안 애가 어떤 사고를 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애가 밤잠이 들었을 때 샤워를 하는 시간을 낼 수 있는데

꼭 애가 자면 샤워를 하겠다고 결심한 날은 애와 함께 잠들어 애와 함께 깬다.


어떤 엄마들은 애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애를 씻길 때 같이 씻는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재주가 없어서 애와 함께 씻기까지는 좀 시간이 걸렸다.

아마도 최근에 들어서야 같이 씻게 된 것 같다.

물론 같이 씻는다고 예전처럼 여유롭게 씻을 수는 없다.


아이를 씻겨서 욕조에 넣어놓은 후에야 내가 후다닥 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이가 언제 욕조에서 나가자고 할 지 모르니 되도록이면 빨리 해야 한다.


아이마다 다르겠지만 아이가 집에 있는 동안 눈을 떼고 신경을 덜 써도 되었을 때가 18개월쯤이라서

애가 돌아다니게 놔둔 채로 처음으로 샤워를 하는 날은 참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기고 혼자서 사우나나 찜질방이라도 가는 게 가장 사치스런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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