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플로우지니 Mar 10. 2023

내 그림인데요?

모작의 습격

인터넷에서 찾아 저장해 둔 수많은 그림과 사진들은 대부분 인스타그램에서 캡쳐한 것들이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그림체가 있는지, 얼마나 아마추어 작가들이 많은지, 얼마나 예쁘고 힙한 그림이 많은지, 그림 세계가 얼마나 폭넓은지를 인스타그램 세계에서 배우는 중이었다.


마들렌 이후 몇 점의 그림을 더 그리는 동안, 점점 자신감이 붙고 있었다. 휴대폰 가득 저장되고 있는 예쁜 그림들 중 하나를 골랐다. 이제는 도전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유리병에 안개꽃과 목화가 꽂혀 있는 그림. 어쩜, 유리에 하늘빛과 핑크빛 색이 투명하게 터치되어 있었다. 유리는 이렇게 표현하는 거구나... 유리의 두께는 이런 식으로 그리면 되는구나. 하며 공부하는 자세로 그림을 보게 되었다. 거기에 꽂혀 있는 목화꽃도, 핑크색 안개꽃도 모든 게 조화로운 그림이었다.


화실에 이 그림을 프린트해 가져갔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이 사람 그림, 좌우가 안 맞네요."

입시 선생님의 관점으로 보는 그림은, 좌우대칭이 딱 맞아야 하는 거다. 그녀의 특기였다. 그 기술로 살아남았고 그 기술로 밥을 먹고사는 분이셨으니까. "진희 씨 스케치는 좌우가 딱 맞네요. 이 사람 그림보다 나아요."라는 말을 덧붙이신 걸 보면, 내가 듣기 좋으라는 의도도 있으셨을 거다. 

반면, 나는 그 말에 김이 푹- 새는 기분이었다. 좌우대칭 좀 안 맞으면 어떤가. 동시에, 이런 기분을 느끼는 나에게 놀랐다. 입시생을 가르치는 경력 20년의 미대졸업자의 말에 '그건 아닐 수도 있다'라고 생각하다니. 이전의 나였다면, 무조건 그녀가 맞았다. 미대 졸업생인 선생님의 말은 진리였다. <미대졸업생>이면서 <선생님>이라는 권위는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알려주시는 것 하나를 똑같이 연습하는 과정 외에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면, 선생님은 맞고 나는 그 생각을 따라가고자 애쓰는 자였다. 

입시로서의 미술을 하면, 이런 생각은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다. 미리 그 길을 가본 사람의 조언을 잘 흡수하고 그가 말하는 대로 연습해서 빠른 속도로 연습한 것을 뱉어내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 어릴 적부터 그들처럼 되고 싶었기에 그들이 '틀릴 수 있다'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당신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미세한 균열은, 그래서 내 그림 생활을 완전히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다. 더 이상 내가 그리는 그림을 '검사'받고 싶지 않았다. 내 그림의 좌우가 대칭인지에 대한 평을 듣고 싶지 않았다. 화실을 계속 다니고 있었지만, 내 그림에 선생님이 손대는 것이 싫어, 화실에서 스케치만 하고 색칠은 집에서 한 후 완성작은 보여 드리지 않았다. 완성작을 보여 드리는 순간, 선생님은 '선생님'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돈을 받았으니, 그냥 '좋네요'정도의 멘트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손봐줄 곳을 찾아 붓을 댄다. 그 순간, 내가 생각했던 <완성>의 모습이 달라진다. 그것이 싫었다. 


병에 담긴 안개꽃과 목화 모작이 완성되었다. 오롯이 내 힘으로 그려낸 것이었다. 인스타그램 사진과 내 그림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똑같았다. 세상에. 캡쳐한 그림을 이렇게 그리다니. 그림이 완성되면, 심지어 이렇게 예쁘게 완성되면! 말할 수 없이 기뻤다. 늘 그랬듯,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몇 안 되는 지인들이 눌러주는 하트가 행복이었다.


"이거 내 그림인데요?"

며칠 후, dm(다이렉트 메세지)으로 연락이 왔다. 내 그림이 캡쳐되어 있었고, 그 그림의 원작자라고 했다. 메세지 속 어투에는 분노가 묻어 있었다. 그림이 너무 예뻐서 그림만 확대해서 캡쳐 해뒀다가 그렸다고, 나는 그냥 예쁜 그림을 캡쳐해서 그릴뿐인 그림 초보라고, 정말 죄송하다고 했다. 답하는 손이 벌벌 떨렸다. 너무 놀란 마음에 심장이 곤두박질치는 느낌이었고, 수치심에 얼굴이 벌게졌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원작자를 태그 한다고 했다. 누구의 그림을 베껴 그린 건지 언급이 필요하다며 다음부터 조심해 달라는 말에, 잘 몰랐다고 죄송하다고 사과하며 얼른 그 작가님의 이름을 내 그림 아래 같이 걸었다. 그러고 보니, 그 작가님의 그림을 베껴 그린 게 처음이 아니었다. 팔로우해놓은 작가들의 그림 중 예쁜 것이 있을 때마다 그림을 크으으으으게 화면 가득 확대해서 캡쳐하곤 했고, 그중 몇 개를 따라 그렸는데, 공교롭게도, 이 작가님의 그림이 너무 내 취향이었던 것이었다.


며칠 안에 나는 내 인스타그램 피드에 있던 '따라 그린 그림'들을 모두 삭제했다. 이렇게 똑같이 잘 따라 그린 것을 자랑스러워하던 마음이 수치스러웠다. 이런 것도 모르던 생초보인 내가 한심했다. 

다시는 남의 그림을 보고 따라 그리지 않으리라 다짐했고, 사진을 찾기 시작했다. 


온전히 나의 것을 찾을 시간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선물하는 기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