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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우지니 Mar 13. 2023

취향의 발견

스물여덟, 결혼을 앞두고 엄마가 혼수를 하나씩 고르기 시작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신혼집에 들어가, 엄마가 구입한 혼수를 하나씩 받았다. 장롱이 들어오고 냉장고가 들어왔다. 세탁기와 티브이, 이불도 들어왔다. 그날에야 엄마가 뭘 샀는지 알 수 있었다. 엄마가 선택한 것들은 대부분 좋았다. 나였으면 그런 가격에 그 정도 퀄리티의 제품을 찾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엄마가 알아서 샀고 나는 감사하게 받았다. 엄마 돈이니까 엄마의 구매력 안에서 엄마가 사줄 만한 것을 사는 것이었다.


결혼한 지 몇 년 되던 해 어느 날이었다. 엄마가 말했다. "그날, 네가 참 이상하더라고. 안 그러던 애가 어떤 옷을 고르더니 사달라고 조르는 거야. 그날, 그 옷들을 사서 들려 보내고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눈물이 나더라고." 엄마가 말한 그날은 대학교 2학년 때였다. 나는 그날을 가장 기뻤던 하루로 기억하고 있었다. 몸에 맞기만 하면 되는 옷 말고 마네킹에 걸린 예쁜 옷을 사본 것은 처음이었다. 초록색 마 재질로 된 윗 옷과 롱치마였다. 어떻게 그 가게에 갔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내가 너무 예쁘다고 하니 엄마가 들어가 보자고 했나. 어쨌든, 스물이 넘어 처음으로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옷을 사준 그날을, 엄마는 십 년간 상처로 기억하고 있었다. 어려운 형편에 어떻게 엄마 생각은 눈곱만큼도 안 하고 저렇게 이기적일 수 있는가, 하며. 그날의 기뻤던 기억이 마구 일그러졌다. 그러고 나서 알았다. 모든 선택이 '삭제'된 채 살았다는 것을. 유일하게 '선택'한 날, 엄마에게 비수를 꽂았다는 것을. 내가 쓸 혼수가 뭔지, 내가 하나도 알지 못한 채 결혼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는 것을. 그런 생활이 익숙해서, 이상하다고 생각조차 못한 채 서른이 넘었다는 것을.


어릴 적 인생 대부분,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집에 돈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아빠는 대기업에 다니고 있었고 엄마는 주기적으로 집을, 땅을 샀다고 했다. 은행 빚을 갚아야 한다고 했다. 집이 몇 채가 된들, 거지 같았다. 따뜻한 물을 틀고 샤워기로 샤워를 하면 안 되었으며 엄마가 나를 데리고 옷집에 간 적도 없었다. 내가 '선택'하면 안 되었다. 두세 바퀴 시즌을 돌고 박스에 있던 옷을 뒤져 내 몸에 들어갈 법한 것을 사 오니까. 옷걸이에 걸린 옷을 사줄 생각이 없으니까.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것은, '엄마 속도 모르고 비싼 것을 원하는 나쁜 짓'과 같은 뜻이었다. 모든 욕구를 삭제하고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이 편했다. 쇼윈도에 걸린 옷을 보면 갖고 싶을까 봐, 예뻐 보이는 것에 의식적으로 눈길을 주지 않았다. 친구들이 입는, 유행하는 브랜드 옷은,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친구들과 모여서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은, 쓸데없는 돈을 쓰는 일이었다. 그런 욕구 자체가 있으면 너무 괴로울 것을 알았기에, 욕구를 스스로 삭제했다. 


결혼하고 남편과 살면서 '가격'말고 '당신의 취향'에 맞춰 옷을 사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그 말에 얼마나 놀랐는지. 소비의 크기=죄책감의 크기였던 나는, 남편의 말에 약간 애린 감각의 감동을 느꼈다. 내게 돈을 쓰면서 아까워하지 않는 첫 번째 사람이었달까.


학습된 것은 본능처럼 내 안에서 굳어졌다. 누구를 만나도 선택권을 양보했다. 네가 먹고 싶은 거 먹자. 난 아무거나 괜찮아.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자. 난 어디라도 괜찮아. 고르는 게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었다. 누가 선택하면 나도 그렇게 할게, 하는 쪽이 편했다. 






옐로는 그냥 옐로가 아니다. 레몬옐로, 라이트 옐로, 네이플스 옐로, 퍼머넌트 옐로, 딥 옐로.... 이들 중 어떤 노란색을 고를지 생각한다. 이게 좋을까? 붓에 물감을 묻혀 종이에 찍어 본다. 조금 오렌지빛이 돌면 좋겠다며 오렌지를 살짝 섞어본다. 

손바닥만 한 그림 하나를 그릴 때에도, 심지어 은행잎 하나를 그릴 때에도, 수십 가지를 결정한다. 모든 것은 오롯이 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지고 그 잎 하나는 그 선택들의 결정체이다. 어떤 붓에 얼만큼의 물을 섞어 어떤 농도로 그려낼지, 어디서부터 약간의 연두를 섞어갈지, 그림자는 어떻데 할 건지, 잎맥까지 그릴건지, 숨도 쉬지 않고 집중해 잎 하나를 그려간다. 그림을 그릴 때, 나는 없어지고 은행잎 그 자체가 된다. 


몇 점의 그림을 그린 후 A4보다 조금 큰 B4사이즈의 아르쉬지 패드를 샀다. 이 정도의 크기면 나한테는 도전이었다. 여기에 꽃을 그리고 싶었다. 내가 그릴 수 있는 수준의 꽃이 뭘까. 장미는 겹이 많아서 힘들고 작고 꽃잎이 많은 꽃도 힘들 것 같았다. 그렇게 선택한 것이 튤립이었다. 튤립이라면 그릴 수 있지 않을까.

핀터레스트 앱에 들어가 튤립을 찾았다. 튤립 밭에 흐드러지게 핀 튤립, 아래에서 본 튤립, 부케로 만들어진 튤립, 한 송이의 튤립, 병에 꽂힌 튤립, 살짝 열린 튤립...

온갖 종류의 튤립 수천 장 중에서 내가 그릴 수 있겠다 싶은 튤립을 추리기 시작했다. 꽃송이가 너무 많거나 적지 않은 것으로, 사선의 각도에서 찍힌 튤립을 100장 가까이 휴대폰에 저장했다. 이 중 어떤 것을 그려야 할까. 며칠간 사진을 모은 후 사진첩을 열었다. 비슷한 구도의 튤립 100여 장이 한 화면에 쫙 떴다. 그 화면을 보는 순간 왈칵 눈물이 났다. 

나에게도 취향이 있었다니.


네가 좋아하는 게 뭐냐는 물음에 황망해지던 마음. 그 깊은 상처에 새 살이 차오르는 것 같았다. 낯선 감각이었다. 그림이 잃어버린 나를 찾아주고 있었다.

그 후로 뭔가, 바뀌고 있었다.


걷다가 갑자기, 등과 어깨가 펴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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