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다. 3월이라는 것 이외의 정보는 쉽사리 체감되지 않아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몇 시쯤 되었는지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코로나로 아이들 유치원 입학도, 학교 입학도 미뤄졌고 외출조차 자유롭지 않다. 집에서 하루 종일 지지고 볶다 보니 시간도 가늠할 수가 없다. 한참 지났겠지 하고 놀지만 이제 두 시간이 지났을 뿐이고, 밥을 해먹이고 치우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흘러있다.
작년 이맘때 이사로 인해, 여섯 살에서 일곱 살로 넘어가던 때의 첫째 아이는 집에서 3개월을 지낸 후 새로운 유치원에 입학했다. 그 3개월간 TV가 없는 데다 핸드폰까지 금지했더니, 아이는 심심함에 몸서리치며 유치원에 가고 싶다고, 어디라도 보내달라고 했다. 평소에 집에 있고 싶어 한 아이였기에 엄마랑 집에 몇 달 있으면 좋아할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더니 아이는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한자책을 몇 시간씩 따라 썼다. 그게 끝나면 영어를 몇 시간씩 따라 썼고, 그 사이사이마다 피아노 연습을 또 몇 시간씩 했다. 아이는 놀랍게도, 한 번 앉으면 책이 다 끝나도록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 나는 이 아이가 집중력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극도의 심심함이 준 선물이었다.
엄마가 이끄는 아이로 키우지 않겠다고, 아이가 하는 대로 따라가는 열린 마음의 엄마가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이가 가는 길이 '집중력 있게 앉아있는 길'이어서 엄마로서 뿌듯했음을 부인하지 않겠다. 다만, 영상매체가 완전히 금지되어버린 아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분노 지수가 극도로 올라가 있음을, 나는 그때 알지 못했다.
아이는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고 있었지만, 그건 통제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네가 가장 좋아하는 핸드폰, 나쁜 거야.
이러다가 중독이 되고 말겠어. 그만해.
이제 핸드폰은 금지.라는 강력한 통제.
아이는 자다가 몇 번이나 "엄마 미워! 아아아악" 하며 울었다.
매일 밤 악몽을 꾸는 거였다.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하루는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어 상을 차린 후 아이를 불렀는데, 아이가 말했다.
"난 이거 싫어. 김이랑 참치 줘."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내 성의와 노력이 한순간에 부정당한 것 같은 느낌.
"주는 대로 먹어. 나중에 너 혼자 살 때 네 마음대로 먹어."
찬바람이 쌩쌩 부는 말투로 말했더니 아이가 "엄마 죽었으면 좋겠어!"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이는 지난 2년간 '엄마 미워!'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특별히 화가 났을 때 그런 게 아니라 뜬금없이, 잘 놀다가 갑자기 내게 와서 엄마 미워, 라는 말을 뱉었고, 글씨를 쓰다가 갑자기 엄마 미워,라고 말했다. 전혀 강압적인 상황이 아닌데 눈만 마주치면, 심지어 자면서도 하루에 수십 번씩 내가 싫다고 했다.
왜 엄마가 밉냐고 물었고, 엄마한테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라고도 말했다. 달래도 보고 화도 내보았지만 아이는 멈추지 않았다.
뭔가 맥락이 있었다면, 이런 건 아이가 진짜 싫은가 보다, 하고 추측이라도 해볼 수 있을 텐데. 그걸 알 수 없으니 언제까지 이런 문제를 안고 살아야 할까 화도 나고 동시에 절망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엄마 미워'도 건너뛰고, '엄마 죽어'라니.
좀 더 정성을 들여 음식을 준비했기 때문에 그런 소리를 듣다니. 정신이 아득해지며 뚜껑이 날아갔다. 그리고 식탁 한편에 있던 물티슈 봉지를 집어 들었다.
뚜껑 열린 엄마와 의견이 짓눌린 아이의 육탄전. 영화에서나 볼 법한 아이와 엄마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엄마에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아이는 마치 황소처럼 죽기 살기로 머리로 돌격했다. 나는 너를 해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다분히 보이는, 거침없는 내달림. 그리고 막아서며 밀어버리는 엄마.
엉망진창의 시간이었다. 아이를 힘으로 들어 침대에 내동댕이쳤고, 아이는 화를 참지 못해 방의 유리창을 손으로 힘껏 내리쳤다. 일곱 살이 된, 성난 아이는 그런 식으로 분노를 표출했다. 지옥이었다.
다행히도, 내게는 마음을 기댈만한 멘토가 있다.
마침 근처 도서관에서 언니의 강의가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이미 여러 번 들은 강의지만, 들을 때마다 아이에 대한 사랑이라는 게 뭔지 다시금 깨닫곤 했다.
강의가 끝나고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 아이가 저한테 엄마 죽어, 라는 말을 했어요."
언니는 놀라지도 않고 물었다.
"왜 그런 얘기를 했어?"
"국 대신 참치랑 김을 달라고요."
"아이한테 참치랑 김을 주지 그랬어. 아이는 그걸 엄마의 사랑이라고 느꼈을 거야. 반찬은 엄마가 원하는 거지, 아이는 아니었잖아. 아이의 요구를 들어줘. 그게 사랑이야."
너희 아들 참 이상하다고 하는 시선이 아니라, 놀라지도 않아서. 오히려 아이가, '엄마가 다 받아줄 거라 믿어서' 그런 얘기를 하는 거라고 말해줘서 얼마나 위로가 되던지...
"언니, 2년째 '엄마 미워'를 반복하는 건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미치겠어요."
"혹시 그 말, 네가 엄마한테 하고 싶었던 말 아니니?"
"......"
잠시 생각했다. 그랬다. 나는 통제가 강한 엄마가 미웠다. 하지만 감히 무서운 엄마에게 직접, 엄마 미워, 라는 말을 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말을 가슴에 품은 채 어른이 되었다.
아이는 내게, 엄마 미워!라는 말을 함으로써, 내 안에 그런 상처가 있음을 비추어주고 있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비로소 내 안에 하고 싶었던 그 말이 화석처럼 굳어있었음을 깨달았다.
그 후 몇 주동안, 어린아이였던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상상 속에서 쏟아내고 또 쏟아내었다. 나는 그 생각을 바라보며 울었다. 그리고 한참 후, 내 안에 억눌려 있었던 어릴 적 기억들이 스르르 풀어져 날아갔음을 알 수 있었다.
아이는 신기하게도, 그 후부터 내게 "엄마 미워" 대신 "사랑해"라고 한다.
매일같이 울부짖으며 꿈꾸던 아이는 엄마의 감정이 정리되자, 더 이상 그곳을 비추지 않는다.
아이를 낳기 전,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그 날의 내용은, 엄마 여러 명이 평소 생활을 몇 주간 찍으며 전문가에게 조언을 듣는 것이었다.
그중 한 엄마는 매번 영양소를 모두 챙기는 식단 짜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아이의 밥상에는 각종 야채 반찬이 있었고 매번 그걸 준비하는 엄마에게 그것은 자부심이었다. 아이는 매번 채소를 남기려 했고 엄마는 꼭 다 먹게 하는 것이 사명인 것처럼 보였다.
그런 어머니에게 전문가는 채소를 꼭 챙겨 먹이기보다 아이가 좋아하는 식단을 챙겨주도록, 그리고 꼭 다 먹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기를 권했다. 그 엄마는 전문가의 말을 따랐지만 불과 두세 번 만에 솔루션을 포기했다.
자신에게는 5대 영양소가 챙겨진 채소 위주의 식단이 아이에 대한 사랑인데, 그걸 내려놓으라니 아이를 사랑하지 말라는 말처럼 느껴져 죄책감이 든 것이었다.
아이에게 엄마의 식단은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엄마는 라면도 햄도 절대 주지 않는, 내 건강만 위하는 좋은 엄마로 남을까, 강압적으로 채소를 먹는 게 참 힘들었다고 느낄까.
우리 엄마도 그런 거였겠지 싶다. 엄마는 진실로, 내가 그림을 그만 그리도록 하는 것, 학교 중창단에서 끄집어내는 것이 내 미래를 위한 길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내 의사와 상관없이 그 일들은 집행되었다.
내게 그 일들은, 사랑이 아니었다.
무력감, 원망, 분노의 감정으로 남았다.
결국 아이에게 남는 것은 감정이지, 현상이 아니다.
아이의 감정 속에 자신을 허용해주는 엄마인 것이 아이의 오늘 메뉴보다 중요하다.
아이가 원하는 게 뭔지 세심하게 살피는 엄마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길'보다, 그가 생각하는 '행복'이 우선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