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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우지니 Jul 02. 2020

어린 시절

1장-1

같이 글을 쓰던 선생님이 사진 하나를 올려주셨다. 세 살 아이가 처음으로 네모를 그렸다며 거기에 자신이 바퀴를 달아 자동차를 만들었다고 했다. 첫 네모라니! 나의 네 살 아이가 아직 형태를 그리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네모'라는 형태를 그린다는 것이 감격스러운 일이라는 걸 알았다.

우리 엄마도 나를 그런 눈으로 보았을 것이다. 쥐어준 크레파스로 이리저리 칠해서 면도 아니고 선도 아닌 '칠' 그림이 어느 순간 선으로, 면으로 구분 지을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본 엄마는, 나를 미술학원에 데려갔다. 그것은 본격적인 그림인생의 시작이었다.

미술학원에 간 첫날이 기억난다. 내게는 나름 충격적인 날이었다. 쭈뼛쭈뼛 엄마손을 잡고 들어간 학원에는 긴 머리의 예쁜 선생님 두 분이 계셨다. 엄마는 가고 거기에 덩그러니 남아 그림을 그려야 했는데 이 베테랑 선생님들이 번갈아가며 어머어머, 너무 잘 그린다! 며 호들갑을 떠셨고 나는 혼이 쏙 빠져서 엄마가 없다는 것도 잊었다. 그런 대놓고 하는 칭찬을 듣는 건 처음이라, 나는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다음날도 또 가고 싶었다.

"이건 뭐야?"
"머리 묶은 모양이예요. 뒤에서 보니까 이렇게 생겼어요."
"어머머, 그렇구나."
"얘는 지금 뭐하는 중이야?"
"걔는 지금 친구를 기다리고 있어요."
그냥 그린 건데 선생님께서 하나하나 왜 그렇게 그렸는지 묻자, 그제야 내가 그리던 것들에 이미 스토리가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것을 더 큰 스토리로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상상 속의 한 장면은 그림이 되었다. 그렇지, 돼지가 집을 지었구나. 그러면 다른 두 돼지는 뭘 하고 있었을까. 그 날 날씨는 어땠을까. 집은 뭘로 지었다고 하지? 그러면 그때 늑대는 어디에 있었을까? 아직 화면에 나오면 안 되겠지? 하지만 암시는 줘야 하니까 이쯤 작게 그릴까?

책을 좋아했기 때문에 내 머릿속에는 온갖 상상이 가득했다. 나는 온종일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지겹지가 않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자연스럽게 내 그림은 늘 교실 뒤에 걸렸고, 큰 대회가 있으면 내 것이 대표로 뽑혔다. 늘 그랬기 때문에 그것은 내게 '당연한' 것이 되었다.
미대에 보낼까 봐,라고 엄마가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듣는 것이 좋았다. 그림을 좋아하고 잘하니까, 그건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는 사이 두 살 터울의 둘째 동생 다음으로 일곱 살, 아홉 살 터울의 동생 둘이 더 태어났고 나는 사 남매의 맏이가 되었다. 엄마는 무거운 책임감에 짓눌렸다. 외벌이 아빠가 아무리 대기업에 다닌다지만, 네 아이의 대학 등록금을 다 내줄 수 있을까 너무너무 걱정된다고, 엄마는 말했다.

미술 말고 공부를 하라고 했다.
미술 말고 공부.

이미 공부에 질릴 대로 질려 있었다. 사택 생활을 하며 엄마들의 줄 세우기 싸움에 1번 말로 출전해 사력을 다해 싸우다 쓰러져 있었다. 기댈 곳이라곤 없어 도망치듯 미술학원으로 가서 몇 시간씩 앉아 그림을 그렸다. 붓질을 하고 있노라면 어제 시험 점수가 엉망이었고 엄마에게 혼났고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어진 것 같은 바보 같은 나를 잊었다. 그림은 유일하게 아직도 내가 잘하는 것이었다. 한참 그리는 풍경화 단계가 끝나가니 곧 파뿌리나 조각상 같은 정물을 배우기 시작할 터였다. 미술학원에서 본 입시생 언니의 그림은 늘 동경의 대상이었는데,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너도 곧 하게 될 거야.
그런데 이제, 미술 말고 공부에 매진하라고 했다.

표면적으로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어제까지 다닌 미술학원을 이제 다니지 않는 것 뿐. 학원 일정 하나 빠진 것이 뭐 그리 큰일이겠나. 하지만 내게 그것은 단순히 '학원'이 아니었다. 학교 끝나고 갈 도피처가 없어졌고 아무것도 아닌 내가 그래도 잘하는 게 하나는 있다는 마음의 탑이 무너졌다. 미술 전공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고 미술 쪽으로 차곡차곡 쌓아 올린 줄을 엄마가 가위로 싹둑 끊어버렸음을 알았다.

그때 통곡했더라면 마음의 멍울이 좀 작아졌을까. 데굴데굴 구르며 발버둥을 치고 악을 쓰며 학원에 더 다니고 싶다고 했더라면.
어차피 달라질 것이 없음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목 밖으로 소리 내지 못했다. 엄마를 조금 설득해 미술 학원에 더 다녀볼 수는 없을까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엄마는 엄격했고 말이 나온 이상 끝난 거라는 걸 알았다. 타협점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어린 동생들이 있었다.
그 날 이후, 나는 목에 울음이 생겼다. 공부도 못하는 주제에 소리 내어 울기까지 할 수는 없어서, 목 밖으로 꺼내지지 않는 울음을 울었다.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면, 목 안에 울음주머니 같은 것이 진동했다. 꺼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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