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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우지니 Jul 04. 2020

돌고 돌아, 다시 그리는 삶으로

운명이었을까.


미술학원을 그만둔 이듬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교실 뒤에 붙일 그림으로, 선생님은 내 것이 아닌 정아의 것을 골랐다. 정아의 도화지에는 구겨진 워커 신발 한쪽이 흐트러진 줄을 치렁치렁 늘어뜨린 채 서 있었다. 색이 맑으면서도 촘촘해서, 누가 봐도 아주 잘 그린 그림이었다. 내가 동경하던, 입시미술의 결.


그래. 인정해야 했다. 친구의 정물화가 내가 그린 풍경화보다 낫다는 걸. 학원에서풍경이 끝나야 정물을 배우기 시작했다. 나는 그 진도까지 나가지 못하고 그만뒀으니까 배우는 단계로 보자면 정아는 나를 앞질다고 할 수 있었다.


학원을 그만둔 지 1년도 되지 않았는데도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이 누구에게 밀려나는 중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했던 순간, 내 안에 아슬아슬던 선이 끊어졌다. 끝없는 절벽 아래로 떨어져 버린 것 같던, 가슴이 쿵 떨어지던 그날을 잊지 못한다. 이제 학교에서 그림을 가장 잘 그리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는 것을, 절망하며 받아들인 날이었다.
그 날 이후,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시간은 흘렀고, 한 때 화가가 꿈이었던 시기가 있었다는 것도 잊었다.

대학에 진학해 그림과 전혀 상관없는 과에 다니던 어느 날 우연히 친구가 전공하던 인테리어 책 한 권을 보게 되었다. 책에는 사용된 색상이 뭔지, 어떤 톤으로 색을 맞추면 안정감이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었다.

구도를 잡고 공간을 나누고 색을 입히는 과정을 보자, 갑자기 어린 시절 그림에 몰입하던 내가 떠올랐다. 계속 섬 주위를 표류하다가 어느덧 집을 찾은 느낌이었다.
인테리어 관련 자격증을 따고 디자이너가 되었다. 도면을 그리는 것도 그림의 일종이어서, 매일같이 신이 났다. 적당히가 아니라 혼을 불사르는 자세는 스스로를 불타게 만들었다. 어느 날, 하루도 더 못 견디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를 혹사시키는 줄도 모르고 일하다가 갑자기, 나는 인테리어를 그만두었다.


결혼을 하고 수학 과외를 시작했다. 학생들이 모여들었고 정신없이 바빴다. 매일같이 문제집을 쌓아놓고 풀었다. 10년간 점점 노련해졌고 그 일을 평생 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예상은 빗나갔다. 첫째 아이를 낳으면서 수업을 반 이상 줄였다. 아이를 낳은 후 일을 하려니 수업도 육아도 어정쩡한 사람이 되었다. 둘째가 태어났을 때엔, 모든 수업이 기한도 없이 중단되었다.

기다리던 아이였는데도 출산 후 나는 철저히 소멸되고 있는 것 같았다. 돈을 벌지 못하고 있으며 언제 벌 수 있을지 기약도 없다니, 무가치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시도 때도 없이 신경질이 났다. 왜 아이를 낳고 일을 그만두는 것이, 암묵적으로 엄마여야 하는가. 나는 나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젖먹이를 두고 글쓰기를 배우러 다녔다. 어떻게든 소멸하는 나에게 생명력을 부여하고 싶었다. 책을 내서 내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드디어 초고를 다 쓰고 조금은 단단해진 나에게 물었다.

진짜로 하고 싶은 게 뭐야?

이제 뭘 할 거야?


그러자 마음속에서 이런 음성이 들렸다.
'그림을 그려.'




돌고 돌아, 나는 다시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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