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내 MBTI를 틀리는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했던 시점은 내가 창업팀 2년차가 될 무렵이었다. 내 생전 INFP에서 INFJ가 될지언정 극강의 관계지향형(F) 인간이었는데, 처음으로 'ST'형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다. 아무리 혹독한 환경에서도 와닿지 않았던 극강의 현실·논리 성향이 겨우 2년 만에 스며든 셈이다.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난 타고난 성향(NF)을 싫어하지 않았다. 차라리 좋아하고, 적당히 활용해왔다. 사람을 좋아하는 성질 덕분에 극내향형임에도 기자 직무를 어찌저찌 수행할 수 있었다. 직관적인, 상상과 스토리를 좋아하는 성향은 글쓰기에 꽤나 도움이 됐다. 난 나다움으로 벌어먹는 성인으로 성장해왔다.
헌데 내 성향이 바뀌다니. MBTI가 달라보인다니! 내게는 생경했다. 이걸 '위기 신호'로 받아들여야 할지 헷갈렸다. 언제나 '달라진 내가 마음에 들고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다면 성장한 것'이라고 판단해왔는데, 'ST'로 돌아선 내 모습을 어떻게 정의할지 난감했다. 어쩌면 한 번도 본 적 없는 나라서 그랬던 모양이다.
주로 앞에 X발이 붙는 식으로 쓰이는 짤(밈), 출처 : 피식대
무엇이든 나쁘게 보자면 한도 끝도 없다.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성향이 커졌다는 걸 드라이 해졌다, 정 없어졌다고 규정할 수도 있다. MBTI 밈으로써 "너 T야?"라는 대사가 딱 그런 느낌이다. 마치 T형에 속하는 사람은 인정머리 없는(?!) 인공지능쯤으로 묘사된다. 나의 변화를 그렇게 받아들이려면 그럴 수도 있었다.
창업의 소용돌이에서 한 걸음 물러서 그때를 돌이켜 보면 MBTI의 변화가 꼭 나쁘지만은 않았다. 극심한 'NF'형 인간이었던 나는 너무 많은 생각과 고민으로 인해 불안을 달고 지냈다. 사람에게 싫은 소리를 못 하는 게 거절을 못 하는 성미로, 바로잡아야 할 타이밍을 놓치는 우유부단함으로 번졌다. 'NF'만으로 지속해서 살 순 없었다.
시니어가 되는 과정에서 타고난 자질과 후천적으로 학습한 역량 사이에 균형이 생긴다고 한다. 그래서 MBTI의 각 비율은 중간으로 수렴할수록 소위 '철이 들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는 조언을 접했다. 오호라, 참으로 그랬다.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하고,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들을 지키는 방편으로써 'ST'는 내게 꼭 필요했다.
2021년 12월 연말의 김지윤. 인터뷰 프로젝트 제작을 앞두고 카메라 테스트를 하는데 벌써 지쳐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다른 선택을 하고픈 순간들이 있다. 팀과 씽크가 맞지 않는 팀원에게는 적절한 시점에 쓴소리를 했어야 했다. 경영과 운영을 도맡았다면 나를 내려놓고 성과에 집중하는 현실 감각이 중요했다. 신뢰를 형성한다는 것은 밑도 끝도 없이 좋은 리더가 되는 게 아니었다. 그 시절 나는 좀 더 "T야?"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오랜만에 오프라인 현장에서 커리어 마인드셋과 피드백 방법에 대한 강연을 들었다. 꽤 구체적이었고, 동시에 지난 실수와 아쉬움을 천천히 곱씹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앞으로 어떻게 다른 선택을 해야 할지 가늠하기 좋은 내용들이었다. 누군가 기꺼이 경험을 공유할 때 청자는 그 시간을 거저 얻는 것과 같았다.
강연 후기를 글로 남겼다. 앞으로도 본래 나의 성향이 천지개벽해 뒤바뀌진 않겠지만, 여전히 내게 강력한 무기가 돼 주겠지만 시니어로 성장하려면 다른 MBTI를 갖추는 게 어떨까 싶다. 그래야 미래의 내가 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T이고 싶고, S이고 싶다. '달라지는 나'로서 꾸준히 성장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