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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Jun 19. 2019

멜버른, 그 여행의 시작

8천원을 쓰느냐 마느냐

우여곡절 끝에 멜버른에 도착했다. 멜버른은 이번이 두 번째다. 자그마치 8년 전, 1년간의 워킹홀리데이를 마칠 때쯤 그 기념으로 멜버른 여행을 혼자 왔었다. 그때도 비가 오고 날이 많이 흐렸었는데 이번에도 구름이 가득 낀 우울한 날씨다. 


일단 비행기에서는 잠을 자지 못했다. 180명 만석에 좁은 비행기.. 피곤해서 눈은 감기는데 잠이 들지 않았다. 이럴 때는 깨끗하게 포기하는 게 났다는 게 그동안의 경험으로 내린 결론. 결국 책을 읽다가 다운로드하여 둔 미드를 보다가 하며 시간을 보냈다. 3시간 정도가 지났을 무렵 비행기가 하강하기 시작하더니 승무원들이 기내를 돌며 착륙을 위해분주하게 움직였다.


'이제 다 왔구나'


국내선 터미널은 또 새로운 느낌이다. 이미그레이션이라는 절차가 없으니 복잡하지도 않고 왠지 긴장감도 덜했다. 짐을 찾고 눈에 띄는 가장 가까운 의자에 앉아 시티로 들어가는 방법을 찾아봤다. 현재 시각 오전 8시. 호스텔 체크인은 보통 2시부터니 아직 시간이 남아도 너무 많이 남았다.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한 채 날이 밝은 것을 보니 당장 어디라도 몸을 누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멜버른에서 공항 이동은 보통 '스카이버스'로 이루어진다. 편도 19불의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워낙 물가, 특히 교통비가 비싼 호주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티켓을 구매했다. 새삼 퍼스에서 4.6불 내고 공항에서 시내까지 이동했던 것이 그리워졌다. 


대신 스카이 버스는 가격만큼의 편리함을 자랑한다. 이층짜리 버스인데 보통 1층에 짐을 두고 2층에 탑승한다. 버스가 높다 보니 탁 트인 창밖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조금은 멍한 상태를 유지하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멋진 풍경이 보이면 보이는 대로, 지루한 풍경이 보이면 역시 보이는 그대로. 달리는 차창밖을 바라보는 일은 좋다. 왜인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심심하지 않다. 20분 정도 더 달리자 대도시를 상징하는 고층 건물들이 보였다. '8년 전, 그때도 저랬었나?' 뭔가 더 도시다워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긴 8년이면, 변하고도 한참 변할 수 있는 시간이지. 


스카이 버스는 멜버른 시내 중심의 서던 크로스 역에서 정차한다. 미리 예약해둔 숙소는 바로 그 근처였다. 8년 전 내가 예약했던 숙소는 중심에서 2킬로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왔다 갔다 하는 게 아무래도 피곤했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이번에는 접근성을 염두에 두고 숙소를 찾았다. 숙소는 이제 예전처럼 잠만 자면 되는 곳은 아니게 됐다. 


그때는 지도를 들고 숙소를 찾았는데, 지금은 구글맵을 켜고 다닌다. 호주에 다시 돌아오는데 정말 많은 시간이 흘렀구나 깨달았다. 


호스텔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 반. 아직 체크인을 하려면 4시간이나 넘게 기다려야 했다. 혹시나 얼리 체크인이 될까 하는 마음에 카운터로 가보았다. 


<얼리 체크인은 12시부터이고 10불을 추가로 내셔야 합니다.>

<10불이요?(당황) 그럼 그냥 2시까지 기다릴게요.>


10불이라는 말에 당장 말기로 결정했다. 하루 숙박비가 30불 정도인데 고작 2시간 추가하는데 10불을 내라니? 그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 로비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시계를 다시 한번 보고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10불.. 10불... 하루 숙박비가 30불인걸 생각하면 단 두 시간을 위해 10불은 낸다는 것이 굉장히 비싸게 느껴졌다. 그러다가도 밖에 나갈 기력도 없는 상황에 소파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4시간을 기다리느니 10불을 내고 푹 쉬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10불이면 우리나라 돈으로 8천 원이 조금 넘는 건데 이게 그렇게 고민할 문제인가 싶다가도 이런 식으로 지출이 늘다 보면 생각했던 예산을 훨씬 초과할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그렇게 결정하지 못한 상태로 멍하게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점점 더 피곤해지는 몸과 더디게 흘러가는 시간을 보고 있자니 그 깟 8천 원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커피 한잔 군것질 한번 안 하면 되는 돈이니까 일단 쓰고 눕자 하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달까. 8천 원. 일상에서는 쓰고 기억도 하지 않는 액수의 돈인데 막상 정해진 버젯 안에서 써야 하는 여행자가 되다 보니 쪼잔해진다. 



결국 얼리 체크인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점심은 굶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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