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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Jun 26. 2019

우울한 날씨 만큼이나 우울했던 기분

나는야 론리 트래블러

대도시가 주는 중압감이 있다. 아무래도 여행할 때 숙소는 위치가 중요하다 보니 도심에서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선택하는 편인데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이 복잡한 빌딩 숲을 누벼야 한다. 멜버른은 호주의 대표 도시이다 보니 단 몇 분 만에 도착하는 거리인데도 숙소에 처음 도착하기까지 왠지 모르게 이 도시가 주는 부담감에 긴장되고 주눅이 들었다. 


숙소에 도착한 시간이 일러 당장 체크인을 할 수는 없었다. 얼리 체크인이 가능한지 물어보았더니 무려 10불을 추가로 내야 한다고 하길래,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그러기로 했다. 혼자 여행할 때는 특히나 비용 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편이라 처음에는 10불이 너무 아까웠지만 마냥 몇 시간을 뜬 눈으로 기다릴 순 없었다. 바깥을 돌아다닐 체력도 없었고 단지 어딘가에 눕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얼리 체크인을 하자마자 세수, 양치 정도만 대충하고 잠들었다. 그리고는 7시간을 내리 자버리고 말았다. 오늘 같이 피곤한 날은 하루 정도 아무것도 안 하고 푹 쉬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었는데 막상 하루를 자는데 다 써버리고 나니 조금 허무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간단하게 저녁도 먹고 오랜만의 플린더스 역도 보고 싶어서 느지막이 숙소 밖을 나섰다. 


이건 이번 여행 사진은 아니다. 8년 전 호주에서 워킹 홀리데이 하던 때 찍은 멜버른 사진.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 혼자 앉아 맞은편 가게의 사람들을 훔쳐보던 기억.


도시를 누비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멀끔한 양복 차림으로 퇴근하는 사람, 친구들과 떠들며 지나가는 사람들, 책을 한 아름 옆에 끼고 바쁘게 걷는 학생들. 다들 저마다의 방법으로 이 도시에 소속되어 살아가는 모습. 그 옆을 멍하게 지나가는 나 자신이 왜 초라해 보였는지는 알 수 없다. 여행 중 가끔 이런 순간이 올 때는 문득 내 자리가 그리워진다. 나도 내 자리로 돌아가면 내 직장, 내 집, 내 친구들이 있는데 말이야.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온통 결핍된 것 투성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낯선 숙소에 적응하고 낯선 도시, 낯선 길에 적응하고. 혹시 내가 하는 행동이 여기 있는 누군가에게는 무례한 일이 아닌지  항상 신경을 곤두선다. 모든 것이 불안정한 여행자의 하루. 갑작스레 찾아오는 외로움과 우울함을 혼자 견뎌내야 하는 건 론리 트래블러의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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