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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Jul 02. 2019

두번째 그레이트 오션 로드

이번에는 제발 맑아줘라 날씨야.

허무하게 끝난 멜버른에서의 첫째 날이 지나고 둘째 날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미리 예약 해 둔 '그레이트 오션 로드' 투어가 있는 날. 많이 걸을 것이 분명하니 그동안 신었던 스포츠 샌들 말고 조금 답답해도 러닝화를 신기로 했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 투어는 사실 이번이 두 번째다. 우리나라 대표 항공사 티브이 광고에도 등장하고 자동차 광고에도 여러 번 등장한 그레이트 오션 로드. 멜버른 여행의 필수 코스라고 할 수 있지.


비오는 멜버른


아무리 필수 코스라도 해도 했던 투어를 다시 한다는 것에 대해서 고민이 좀 있었는데 그래도 하게 된 이유를 꼽자면.


첫째, 그때는 겨울이었고 날씨가 좋지 않았다. 너무 추웠고 흐렸다. 1년 내내 온화한 기후를 유지하는 골드 코스트에 살다 보니 호주가 추워봤자 얼마나 춥겠어하는 마음에 짧은 가죽 재킷만 입은 채 멜버른에 도착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투어 내내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둘째는 변덕스러운 멜버른의 날씨 때문이었다. 멜버른은 흐린 날이 많은 편인데 그 날 역시 구름이 잔뜩 낀 날씨로 맑은 하늘을 전혀 볼 수 없었다. 이래저래 아쉬운 투어였다.


2011년도 나의 첫번째 그레이트 오션로드 투어. 흐렸다. 마냥 흐림.


그래서 한번 더 하기로 했다. 생각보다 투어 비용도 비싸지 않아 고민하지 않고 진행했다. 일일 투어를 할 때는 웬만하면 한인 투어를 찾는 편이다. 해외 생활이 길어지면서 느끼는 건 한국인과 함께 하는 것이 가장 잘 맞고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종종 외국에서까지 한국인과 함께 해야 할 이유가 있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한국에서든 외국에서든 난 한국인과 이야기하는 것이 제일 재밌다.


한국인 그룹 투어를 진행하는 날은 언제나 조금 긴장된다. 혹시 나 빼고 다 커플이거나 일행이 있으면 어쩌지 하는 긴장감이라고 해야 하나. 뭐 혼자 다니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그래도 함께 점심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눌 친구가 있으면 더 좋잖아.


그레이트 오션 로드 투어는 보통 아침 8시부터 시작된다. 타운 홀 근처의 미팅 포인트에서 만나 승합차를 타고 이동하는 일정. 미리 구글맵으로 검색해보니 내가 묵는 숙소에서 미팅 포인트까지는 걸어서 15분 정도가 걸렸다. 늦으면 기다려 주지 않고 출발한다는 말해 5분 일찍 도착했다. 제대로 왔는지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나처럼 두리번거리고 있는 한국인 무리가 보였다. 제대로 찾아왔군. (속마음) 저 쪽 두 명은 커플이고 저기 세명은 한 무리인 거 같고... 혹시나 혼자 온 사람이 있는지 눈치를 보고 있는데 느지막이 뛰어오는 몇 명이 보였다. 따로 뛰어 오는 것으로 보아 혼자 온 사람들 인 것 같았다(다행). 이따가 돌아다니기 시작하면 사진도 찍어주고 괜히 말도 걸어봐야지 마음을 먹고 버스에 올라탔다.


조금씩 맑아지던 하늘


그레이트 오션 로드 투어는 차량 이동 시간이 절대 적으로 많다. 반 이상이 차량 이동이고 울퉁불퉁하고 꼬불꼬불한 도로도 많이 달린다. 평소 멀미를 잘하지 않는 나도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아팠다니까. 여하튼 한 시간 반 정도를 달려 도착한 첫 번째 투어 장소는 메모리얼 아치였다. 8년 전 투어를 했을 때도 여기에서 내려 인증숏을 몇 장 찍고 이동한 기억이 났다. 특별한 건 없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가 시작되는 입구라는 거 빼고는. 차에서 내려보니 이미 다른 투어팀들로 인산인해이다. 어쩔 수 없다. 유명한 관광지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이때 슬쩍 보니 혼자 온 사람들은 나 포함 4명 정도. 어떻게 해야 말을 걸고 친해질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그들도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스멀스멀 서로에게로 모여들었다. 여행지에서 처음 보는 사람과 친해지는 방법으로 말할 것 같으면 '사진 찍어 드릴까요?' 만한 것이 없지.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모두 워킹 홀리데이를 하고 있는 친구들이었다. 나도 질세라 내 8년 전 워킹 홀리데이 경험을 꺼내며 공감대를 형성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심심하지 않게 투어를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로도 몇 번의 투어 장소에 더 들렀지만 기억에 남는 건 별로 없었다. 한 30분 달리다가 내려주고 15분 뒤에 다시 차량에 복귀하는 식의 인증샷 찍기 투어가 계속 됐다. 가이드 투어가 좋기도 싫기도 한 이유이다. 뭐 다들 12 사도 바위와 로크 아드 고지 등을 기대하고 왔으니 불만 없이 버스에서 내렸다 타기를 반복했다. 점심시간쯤 되었을까? 아폴로 베이라는 마을에 내려서 각자 점심식사를 해야 했다. 예전에도 이 근처에서 내려 점심을 먹었던 것이 기억났다. 가이드님 말로는 얼마 전부터 한인식당이 생겨 한식을 먹을 수도 있다고 했다. 나를 포함한 워홀러 무리는 한식을 먹기로 결정. 다들 외국 생활을 하는 입장들이다 보니 음식 맛 자체가 대단하지는 않아도 한식이라는 이유만으로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잠시 들러 점심 식사를 했던 아폴로 베이의 작은 마을



그리고 또다시 한 시간가량 이동. 아침 일찍 일어난 터라 피곤해서 잠이라도 자고 싶었지만 요즘은 조금만 자리가 불편해도 좀처럼 잠에 들기가 힘들다. 예전에는 정말 아무데서나 머리만 대면 잘 잤었는데. 승무원일을 시작하고부터는 잠자리에 무척 예민해졌다.


여전히 날은 흐렸다. 일기예보에는 점심 때는 날이 맑아진다고 했는데 12 사도 바위에 다 다라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만 해도 구름이 잔뜩 낀 흐린 날씨였다. 보통 여기서 헬기투어를 많이 하는데 다들 하지 않기로 했다. 나야 이미 8년 전에 해보았기 때문에 당연히 패스했고 다른 친구들도 흐린 날에 굳이 비싼 돈을 주고 하고 싶지는 않다고 하며 포기했다. 결국 모두 걸어서 12 사도 바위를 볼 수 있는 전망대에 도착했다. 오랜 시간 동안 파도의 침식작용으로 만들어진 12개의 바위. 지금은 7개의 바위와 밑동만 남은 1개의 바위 총 여덟 개만 남아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장관이다.


12사도 바위로 가는길. 신기하게 맑아지기 시작한 날씨.


신기하게 날이 맑아지기 시작했다. 고작 10분 전까지만 해도 우울한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는데 눈이 부실 정도로 하늘이 개고 햇빛이 비쳤다. 멜버른에서 파란 하늘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지 싶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마지막이었다. 이나마도 엄청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모두들 들뜬 마음에 사진을 찍고 찍어주고 찍히기를 반복했다. 날이 좋으니 어떻게 찍어도 사진이 잘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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