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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Jul 09. 2019

그렇게 나쁘지도 특별하지도 않았어

근데 그런 날이 더 많잖아?



본격적인 12사도 바위 투어가 시작됐다. 이 절벽은 두 번째로 왔지만 맑은 날에 오는 것은 처음이었다. 12사도라는 이름이 잘 어울리는 풍경. 홀연히 파도를 맞으며 서있는 바위들이 정말 열두 제자를 닮았다. 파란 배경의 12사도 바위를 보고 있자니 왠지 8년 전에 보았던 흐린 날의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왼쪽 사진과 같은 풍경이, 오른쪽으로 돌리면 오른쪽 사진과 같이 풍경이 펼쳐졌다. 수많은 인파에 치어 겨우겨우 발을 옮기고 인증샷을 찍었지만 그럼에도 아깝지 않은 여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온 친구들과는 몇 시간 투어를 함께하다 보니 나름 친해졌다.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투어 장소에서 내리면 자연스럽게 넷이 모여 함께 이동하기도 하고 그랬다. 여행 중에 한인 투어를 하게 되면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혼자 하는 여행 중간중간에 큰 위로가 되어주는 한인 단체 투어. 혼자 하는 여행이 좋다가도 오랜 시간 혼자만 있다 보면 외로워지는 순간이 오기 마련인데 그럴 때 이렇게 한 번씩 단체 투어 스케줄을 넣어주면 좋다. 여기서 만난 인연이 발전되어 다음날 다른 일정을 함께 할 수도 있고 그렇다. 요즘은 어느 여행지나 한국인이 많아서 좋은 것 같다. 


여튼 아무리 세계적인 관광지라 하더라도(그것이 죽기 전에 꼭 봐야 하는 여행지(?) 순위에 든다 하더라도) 계속 보고 있자면 지겨운 건 어쩔 수 없다. 우리는 미팅 시간이 되기 전 가이드님이 추천해주신 아이스크림, 무려 이 지역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해 조금 서둘러 이동했다.


내 최애 디저트, 아이스크림. 취향껏 고른 후 만족스럽게 시식했다.


다음 목적지는 로드 아크 고지였다. 좁은 절벽과 절벽 사이로 파도가 몰아치는 모습이 정말 장관이다. 예전에 왔을 때는 겨울이었어서 그런지 바위가 부서져라 들이치는 파도가 조금 두렵기까지 했는데 햇빛 쨍한 여름날에 오니 전혀 다르다. 이미 많은 여행객들이 멋진 풍경을 즐기며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이 곳에서는 20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만 머물 수 있었다. 처음엔 이렇게 멋진 풍경을 앞에 두고 어떻게 20분 만에 돌아올까 싶었지만 역시나 생각보다 금방 눈앞의 풍경에 익숙해졌다. 왜 좋은 것은 금방 익숙해지고 지루해지고 결국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는 걸까?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에는 항공사에 취직만 할 수 있다면 평생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행복할 것처럼 간절하게 원했는데, 막상 그 기쁨은 금방 무뎌졌던 것처럼. 나에게 주어지는 호의는 너무 쉽게 익숙해지는 것처럼. 좋은 남자는 금방 지겨워지는 것처럼.



마지막 일정이었던 런던 브릿지 인증샷 투어를 마치고 우린 멜번 시내로 향했다. 급하게 이동하는 만큼 여유 있게 커피 한잔 할 시간도 없었지만 단체 투어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 아닌가. 대신에 미리 머리 아프게 알아보는 수고도 덜고 대중교통이 아닌 전용 차량으로 편안하게 이동하고 말이지. 확실히 단체 투어는 내 스타일이 아니지만 이 정도로 일일투어를 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돌아오는 길에 잠시 들른 휴게소에서 모인 워홀러 4명(한 명은 본인, 구 워홀러)은 카톡 아이디를 공유하고 사진을 쉐어 하기로 약속했다. 시내에 도착하면 딱 저녁 먹을 시간인데, 아무도 같이 저녁을 먹자는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그들도 나처럼 고민만 하다가 내뱉지 못한 걸까? 아니면 이들과 저녁까지는 함께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 걸까? 


여하튼 오전의 미팅 포인트에 다시 도착한 무리는 어설프게 끝인사를 했다. 하루 종일 함께한 가이드님이 미련 없이 떠나는 모습을 보며 왠지 조금은 서운했다. 여행객들에게는 특별했던 오늘 하루가 그에게는 그저 그런 날들 중의 하나겠지? 하는 생각이 들자, 나의 무뚝뚝한 서비스를 받았던 우리 승객들이 스쳐 지나갔다. 최대한 피하고 싶었던 이 비행이, 오늘은 정말 나오기 싫은데 콜씩(병가)을 내고 가지 말아 버릴까 고민했던 그 수많은 비행들이, 그래서 그저 담담하게 내 할 일을 하고 미련 없이 돌아서던 그 비행이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여정이었을 수도 있는데 말이야. 


아쉬움이 길어지기 전에 무리를 빠져나왔다. 


그렇게 특별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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