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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Apr 22. 2019

여행 전은 언제나 불안하다.

다 필요 없으니 안전하게만 돌아오게 해 주세요.


막상 여행이 가까워 오니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출발일은 고작 일주일 남짓 남았는데 숙소나 투어 예약은 커녕 대략적인 루트도 짜 놓지 않은 것이다. 휴가 전엔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계속 미룬 거지 뭐. 그렇게 기다리던 호주 여행인데 이렇게 손 놓고 있는 게 말이 되는가 싶어 숙소 예약 사이트를 켜고 앉았다가도 왠지 섣불리 결정하기는 안 내키고 꼼꼼히 알아보기는 귀찮아서 참 꾸준하게도 예약을 보류해왔다.


사실 예전에 워킹 홀리데이를 하면서 호주 동쪽 해변의 시드니, 멜번, 브리즈번 같은 대도시는 대부분 다녀왔기 때문에 이번에는 서호주의 퍼스를 꼭 일정에 넣고 싶었다. 다행히 두바이에서 퍼스로 가는 직항 편이 있기 때문에 동선을 짜는데 무리가 없었기도 했고. 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퍼스를 첫 도시로 정하면 약간의 긴장감도 생기고 진짜 여행하는 기분이 날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꽤 한참 전부터 퍼스를 시작으로 여행을 시작해야겠다는 어렴풋한 계획이 있었는데 출발 날짜가 다가오자 왠지 퍼스보다는 내가 살던 익숙한 골드코스트를 첫 도시로 들어가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살짝 쫄았던 게 분명했다.


그때 기억이 선명한 것 같으면서도 흐릿하다. 호주 어디에 떨어뜨려 놓아도 어색하지 않게 잘 돌아다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또 모든 게 낯설 것만 같기도 . 모든 여행 전에는 가벼운 불안과 긴장감이 찾아오지만 이번에는 왠지 더한 것이, 너무 이 여행을 기다려와서 그런 건가 싶었다. 그렇게 그리웠던 호주가 나에게 별로 친절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렇게 잡생각을 반복하다 정신이 들어보니 어느새 출국 이틀 전이되었다. 이제는 정말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숙소 예약 사이트에서 깨끗해보이고 후기가 나름 괜찮은 퍼스의 호스텔을 발견하고는 바로 예약을 걸어버렸다. 퍼스에는 대략 이틀에서 삼일 정도 머무를 생각이었기 때문에 일단 이틀 밤만 예약했다. 거기서 하루 이틀 더 묵게 된다면 그때 가서 추가하면 되겠지.


휴가 전 마지막 근무는 새벽 3시에 끝이 났다. 집에 오니 4시. 한숨 자고 일어나 슬슬 짐을 챙겼다. 이미 짐 싸는 것 말고도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았기 때문에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게다가 생각해보니 2주짜리 여행 짐을 꾸려본 건 처음이었다. 한 달짜리, 1년짜리, 아예 두바이로 이주할 때 쌌던 이민용 짐 싸기 때 보다도 까다로웠던 과정이었다. 한 달, 1년 정도의 기간을 두고 짐을 싸는 일은 오히려 편했. 옷, 가방 같은 것만 챙기고 화장품 세안용품 같은 건 아예 가서 사버리면 되니까. 하지만 2주는 애매했다. 가서 사기는 아깝고, 챙겨가려니 용량이 가늠이 안되고. 특히 이번에는 국내선 비행기로 이동이 많을 거 같아서 최대한 낭비되는 시간을 줄이고자 수화물은 붙이지 않고 핸드 캐리로 해결해보려고 했더니 일이 더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집 근처 다이소에 가서 여행용 공병 세트를 사 왔다. 상품 자체가 기내 핸드 캐리 맞춤으로 나온 거라 따로 액체류 용량을 계산하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여하튼 그렇게 세안 제품, 화장품은 해결했다. 그러고 보니 이제 더 까다로운 옷 짐 싸기가 남아있었다. 휴양이 아니라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많이 걸어야 하는 여행이 될 것 같아서 최대한 편하고 가벼운 옷들을 골라 캐리어에 담다가도 가끔 왠지 예쁜 옷이 입고 싶을 것 같아 블라우스나 원피스 같은 것들을 하나씩 추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블라우스에 어울리는 바지, 원피스에 어울리는 신발이 자동으로 필요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작은 기내용 캐리어가 어느새 터질 듯이 빵빵해졌다. 아직 속옷, 양말, 가방, 전자기기 등은 시작도 못했는데 이러면 안 되겠다 싶었다. 결국 실용성 없는 '예쁜'옷 들은 어쩔 수 없이 옷장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다. 하.


왜 항상 여행 전, 집을 나설 시간이 되면 뭔가 빼먹은 것 같은 듯한 불안함에 시달리는 걸까. 여권 있나? 아 여기 있다. 지갑은? 신용카드는? 휴대폰은? 끊임없이 되새김질하며 이것저것 찾아다 이러다가는 문밖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아 '여권만 있으면 되지 뭐' 하고 쿨하게 정신 승리한 후 드디어 현관 문을 닫았다. '아 냉장고!' 냉장고가 작고 오래되어 문이 제대로 안 닫히는 경우가 가끔 있어 냉장고만큼은 확실하게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에 엘리베이터까지 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굳게 닫혀있는 냉장고 문을 확인하고 한번 더 꾹꾹 눌러 닫아 주고 나니 그제 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패기 넘치게 여행을 준비하다가도 언제나 출발할 땐 마음 한편 불안함이 생긴다. 대단한 깨달음도 기막힌 우연도 필요하지 않으니 그저 안전하게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나가서 택시를 잡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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