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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Apr 24. 2019

언제나 설레고 긴장되는 말, 첫 날

떨린드아.. 

요즘 호스텔 저~엉말 좋아졌다.


나는 한국이 아니라 두바이에 살고 있다. 두바이에 살게 된지는 올해, 만 4년을 꽉 채우고 이제 5년 차가 되었다. 두바이는 유럽과 아프리카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해외여행할 때 보통 경유지로 들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항공 산업이 많이 발달하기도 했고. 그 말인 즉, 두바이에서는 전 세계 웬만한 도시들을 직항으로 갈 수 있다는 이야기. 아직 한국에서는 퍼스 가는 직항 편이 없는데 두바이는 있는 데다가 수요가 그렇게 높지 않아 승객수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도 탑승객 입장에선 큰 장점. 열몇 시간을 꼼짝없이 앉아 가려니 벌써부터 양팔과 다리가 저린 기분이 들었는데 텅텅 비어있는 기내를 보자 12시간이 전혀 피로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가운데 붙어있는 4자리를 혼자 차지하고 왔다. 내가 비행기에서 이렇게 잘 잘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 알았다. 언제부턴가 자리가 불편하면 잠에 들지 못해서 장시간 비행이면 여간 괴로운 게 아니었는데, 편하게 누워서 오니 12시간이 1시간 같았다. 이륙 후, 안전벨트 사인이 꺼지자마자 베개와 담요를 세팅하고 누웠다. 하. 있던 피로도 풀리는 기분이 들어. 자다가 인기척이 들려 일어나 보면 식사 시간. 기가 막히게 꼭 내 자리 몇 줄 전에서 깬다니까.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아도 일단 받아 들고 뒤적뒤적거려보다가 맘에 드는 것들만 몇 입 먹은 후 트레이를 정리했다. 포장되어 있는 빵은 혹시나 이따 배고플까 따로 챙겨두고 다시 누웠다. 이런 식으로 라면 10시간이 뭐야? 20시간도 가겠다 싶을 정도의 편안한 여행이었다. 이제 랜딩 한다는 기내 방송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어.  


그래도 언제나 비행기 문은 열리는 법. 혹시나 두고 가는 물건이 없나 내가 앉은자리를 한번 더 확인한 후 아쉽게 비행기를 나섰다. 미리 작성해둔 입국신고서를 한 손에 쥐고 <arrival>을 따라나갔다. 입국신고서의 항목을 채우는 일은 언제나 애매하다. 대충 처음 예약해둔 숙소 연락처와 주소를 쓰고 조금은 긴장되는 마음으로 이미그레이션에 갔다. 어라? 한국 여권 소지자는 줄을 따로 서도 된단다. 외국에서도 자동 입국이 되는 우리나라의 여권. 정말 편리하다. 여하튼 간단하게 입국 심사와 세관신고를 패스하고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통신사 부스로 달려가 프리페이드 심카드를 구매했다. 여러 통신사가 있지만 나는 내가 쓰던 추억의 노란 옵터스로 정했다. 심카드를 끼우고 인터넷이 되는 것을 확인하자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퍼스 공항은 크지 않아 시내로 통하는 버스 정류장을 찾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근데 꼭 <요기다!> 하고 멀찌감치에서 여유 있게 걸어다가 보면 내가 타야 할 버스가 오고, 지금 뛰어야 하는지 걸어도 탈 수 있는 건지 고민하게 하는 애매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정말 매번. 보통 이런 상황이 되면 난 서두르지 않는 편이다. 누가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천천히 가지 뭐. 


눈 앞에서 놓친 버스로 인해, 다음 버스까지 30여분 가량의 여유가 생겼다. 공항으로 다시 들어가 시원한 커피우유를 사서 벌컥벌컥 마시며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나왔다. 분명히 적당히 뜨뜻한 여름밤의 공기인데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상쾌했다. 달달한 커피 우유와 시원한 바람이 더해지니 30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내가 호주에 다시 왔구나. 감격. 


나는 몇 번 버스를 타고 어디쯤에서 내리면 된다더라 하는 애매한 정보만으로 당당하게 버스에 올라탔다. 난 지도를 보면서 반대로 가는 타고난 방향치, 길치인데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모르겠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봐도 어디에서 내려야 할지 알 수가 없어 왠지 느낌이 오는 곳에서 나 자신을 믿고 한번 내려보았더니 역시나 잘못 내렸다. 10분 걸었으면 될 것을 20분이나 걸었네. 그래도 도착했으니 됐다. 


무료 조식은 없지만 저렴한 브런치 메뉴가 있었다. 난 더 좋았어. 


내가 예약한 호스텔은 새로 지은 곳이라 그런지 가격 대비 정말 깔끔했다. 체크인을 하고 정신없이 방으로 들어오니 반가운 한국말이 들렸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네. 나보다 몇 살 아래로 보이는 여성분. 대충 짐을 풀면서 한두 마디 주고받다 보니 처음에는 어떻게 왔는지 몇 살인지로 시작하여 어느새 여기 오기 전에 뭘 했는지 이전 직장에서는 무슨 고충이 있어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까지 끊임없이 중얼중얼 수다를 이어가고 있었다. 나는 여행으로 왔지만 이 동생은 워킹홀리데이를 하러 왔다고 했다. 오늘이 하루차라고. 최대한 꼰대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나도 8년 전에 워킹홀리데이를 왔었다고 말했다. 호스텔 로비에서 맥주 한잔하며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니 또 이건 어떻다 저건 어떻다 조언이랍시고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한두 시간이 흘렀을까? 각자 맥주 한잔씩을 비우고 다시 방으로 들어와 그녀는 1층에 나는 2층에 누웠다. 


나는 4인 여성 전용 도미토리에 묵었다. 이층 침대가 주는 알 수 없는 안정감. 현금이나 여권 같은 중요한 물건들은 머리맡에 왠지 자다 필요할 것 같은 쓸데없는 물건들은 침대 옆 선반에, 수건과 오늘 입었던 축축한 옷들은 침대맡에 걸어두고 나니 묘하게 안정적. 이 작은 싱글 침대가 주는 안정감이 말도 못 하다. 아이패드로 좋아하는 미드를 보고 있자니 저절로 잠이 쏟아지는 기분 좋은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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