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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Jul 09. 2021

Ep.17_한국에 돌아가기로 했어

호주 생활 6개월 만의 결심 그리고 이별 통보

호주에 간다고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반응을 보였다. 날씨도 좋고, 풍경도 좋은 이국 땅으로 가는 사람들에게 나도 보내곤 했던 마음. 그들의 마음에 동조했다. 나 또한 그곳으로 가는 내가 불안하면서도 그저 기대와 설렘이 가득 차 좋기도 했다.



호주에 있었을 때는 사람들이 비슷한 마음을 전해오면 어쩔 줄을 몰랐다. 아니 조금은 쓸쓸하고, 씁쓸해졌다고 하는 게 맞겠다. 그곳의 날씨와 풍경이 좋은 건 사실이었지만 나의 세상을 바꿀 만큼 뛰어나게 좋지는 않았다. 엄밀히 말하면 함께 즐기고 나눌 가족과 친구가, 그것들을 편안하게 누릴 안정감과 여유가 없어서 그 좋음을 충분히 누릴 수 없었다. 그래도 있는 동안은 할 수 있는 만큼 이곳을 사랑해봐야지 하며 여기저기 소박하게 찾아다니며 느끼고 걸었다. 아무래도 달랐다. 경험하지 못했던 풍경과 공기들이 펼쳐졌다. 낯설기도 했지만 때문에 좋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때마다 서울의 좋아하는 곳들이 떠올랐다. 가끔 자전거를 타던 망원의 한강공원 길, 퇴근 버스에서 마주하던 한강을 따라 반짝이던 야경, 가끔 야외수업을 하던 양화 한강공원의 피크닉 장소, 매일같이 찾던 이대 앞 콜드 브루 커피가 맛있는 카페,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아낌없이 찾던 단골집들. 매일같이 통근 지하철 지옥에 시달리며 자주 벗어나고 싶었던 그 회색의 도시가, 사실은 꽤 깊은 안정감을 안겨주며 나를 먹여 살리던 곳이라는 것을 지구 반대편에 가서 몇 개월을 살아보고야 깨달은 것이다.



그렇게 귀국을 결심했다. 더 넓다고 하는 세상에 왔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작게, 갈 수 있는 길은 더 좁게 느껴졌다. 집에 가면, 서울에 가면 해야 할 것들이, 하고 싶은 것들이 샘솟았다. 누군가는 그곳에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냐며 나의 빠른 귀국을 염려하기도 했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모든 것들이 돌아가야만 할 이유처럼 느껴졌다. 그때만큼 서울에 진한 향수를 느껴본 일이 없었다. 앞으로도 그런 감정을 느껴볼 날이 올까. 그렇게 몇 날 며칠을 고민하던 일의 마침표를 찍기로 했다.



"켈리, 나 2주 뒤에 한국에 돌아가기로 결정했어."

자매처럼 지내던 하우스 메이트에게 이별을 통보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귀국에 대한 고민을 틈틈이 드러내기는 했지만, 결정되기 전까지 우리 모두에게 머나먼 일처럼 느껴지던 것. 켈리는 잠깐 놀라고 당황하는 듯싶더니 이내 "그래 지니, 너 한국 많이 그리워했잖아. 이제 가면 가족들 만날 수 있어 좋겠다" 하며 차분히 받아들이는 듯 보였다. 까만 밤 노랗고 은은한 조명 앞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이었다. 언제 이야기를 꺼내야 하나 한시도 고민을 내려놓지 못했던 나는 결국 이야기를 흘려보내고 비로소 한시름을 놓았다. 이미 깊고 늦은 밤이었기에 그녀는 피곤하다며 굿나잇 인사를 전하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지니, 나 한숨도 못 잤어."

날이 밝은 아침. 거실로 나가니 먼저 일어나 식탁에 앉아있던 그녀가 나를 보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죽이 잘 맞는 친구로, 대부분의 일상을 함께하는 자매처럼 지냈던 우리였기에 이별은 여전히 갑작스럽고 슬프게 느껴졌던 것. 아쉽고 슬픈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떠나는 입장인지라 이것저것 고민하고 찾아보고 결정하는 것에 집중해야 했다. 그렇게 내 몫의 아쉬움과 슬픔은 조금 뒤로 미뤄놓았던 것이다. 엉엉 우는 그녀의 옆에서 어쩔 줄 모르다가 가만히 등을 쓰다듬으며 곁에 있었다. 그렇게 가라앉은 분위기도 그녀의 반려묘 밀리가 우스꽝스러운 애교를 부리는 통에 웃음을 자아내며 조금씩 나아졌다. 고양이 최고다, 고양이 만세.



그렇게 우리는 남은 시간을 평소처럼, 그렇지만 더욱 밀도 있게 추억을 쌓았다. 그중 베스트는 그녀의 주키(차의 애칭)를 타고 2-30분 정도 이동해서 작고 한적한 해변에서 즐기던 바다수영. 그녀는 내게 호주에서 먹었던 음식 중 가장 맛있는 음식이나 가장 좋았던 카페 등을 묻는 것을 좋아했는데 호주에서 가장 가지고 가고 싶은 것을 물었을 때 나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하늘색이 이래도 되나 싶은 청량한 날씨, 아담하고 한적해서 완벽했던 그 해머즐리 풀(Hamersley Pool) 비치, 그리고 때론 친구 같고 때로 언니 같던 하우스 메이트 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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