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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Jul 08. 2021

Ep.16_호주에서 만난 손님들

친절을 당연히 여기지 않고 언제나 스윗하게 대해주던,

1. 

"여기는 내 동생이고, 조카들이에요."

자주 오던 커플이 다른 가족들과 함께 식당을 찾았다. 주기적으로 오는 단골손님들은 기억할 수밖에 없다. 그들과 안면을 익히고 안부인사를 건네는 것은 일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기쁨 중 하나였다. 그들은 와서 두리번거리며 나를 찾고, 눈이 마주치면 환한 미소를 보내어왔다. 유독 잘 먹는 남자와 그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아담한 여자. 곧 그만둔다는 마지막 인사를 건네지 못한 것이 아직까지 마음에 남는 일이 되었다. 내가 없는 그곳에서 두리번거리며 나를 찾았을, 이름도 묻지 못한 그들을 그리며.




2.

"한국어 공부하고 있어요. 가끔 궁금한 거 물어봐도 될까요?"

한식당에서 일하다 보면 계산하면서 한국어 공부하고 있다는 손님을 자주 만났다. C도 그중 한 명이었다. 대학생인 사촌오빠와 밥을 먹으러 온 고등학생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번호도 주고받았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그들과 프리맨틀로 나들이를 가기도 했다. 오락실에서 신나게 드라이빙도 하고, 바닷가 앞에서 피시 앤 칩스도 먹다가 "근데 밥 먹으면서 왜 날 보며 힐끔거리고 웃었던 거야?" 궁금함이 쌓인 내가 물었다. "그게... 주방에서 자꾸 쿵, 퍽, 탁 소리가 크게 나서. 하하." 아직도 가끔 그녀와 메신저를 통해 안부를 주고받는다. 내가 주방에서 특유의 덜렁 거림을 표출하지 않았더라면, 그녀가 내게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는 말을 꺼내지 않았더라면, 매장이 바빠 우리에게 잠깐 대화할 시간이 주어지 않아 서로 번호를 주고받지 않았더라면 하는 상상을 가끔 하면서.



3. 

"지니, 마지막이라는 얘기 들었어요. 아쉽네. 무사히 잘 돌아가요."   

이른 아침마다 가장 큰 사이즈의 시원한 라떼를 주문하던 우람한 트레이너 손님, A. 특유의 무표정함과 무뚝뚝함에 자주 오던 단골임에도 매번 긴장하게 되는 손님이었다. 커피를 주문하고 앉으면 자리로 얼음을 가득 담은 컵과 물병을 그의 테이블로 가져다주는 관례(?)가 있었고, 가끔 계란 흰자 6개로 만든 스크램블과 빵을 주문하기도 했다. 가장 큰 반전은 그가 기초 한국어 공부 책을 펼쳐놓고 공부하고 있었던 광경. 그 우람하고 거대한 사람이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이 볼 법한 책을 보며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귀엽고 친근하게 다가왔다. 테이블 점검을 하며 지나가다 우연히 힐끔 봤을 뿐인데 그날 이후로 나 혼자 그와 친해진 기분이 들었더랬다. 그가 기대도 앉았던 마지막 인사를 내게 해 준 것에는 적지 않은 감동을 받았다. 너무 당황해서 횡설수설 하나마나 한 답을 한 것이 너무 아쉽지만. 우람한 몸도, 한국어 공부 삼매경도 여전하시려나!



여러 사무실이 있는 큰 빌딩 앞에 있던 카페에서 일했던 터라 규칙적으로 오는 손님이 대부분이었다. 매일 아침 카푸치노를 주문해 매장에서 마시며 유쾌한 대화를 이끌던 K, 아내의 커피와 본인의 핫초코를 주문하던 M, 가장 작은 사이즈의 허스키 컵을 들고 와 서로의 플랫화이트를 번갈아 사던 직장동료 듀오 D와 R, 나의 친절을 당연히 여기지 않고 언제나 스윗하게 대해주던 K, 시종일관 차가운 얼굴이다가 이름과 음료를 기억하는 날 활짝 웃으며 "Thanks, sweetie." 하던 H. 매일 출근길 단골들의 이름과 음료를 적어 외우던 탓에 생생하던 그들이 이제는 점점 희미해져 간다. 


카페 마감을 하며 머신을 정리하는 시간은 그들의 퇴근시간이기도 했는데, 남은 원두 찌꺼기를 털어내느라 여념이 없는 내 쪽으로 다가와 통창의 유리 너머로 인사를 건네던 단골손님들. 동전을 던지고, 커피 심부름하는 하인 대하듯 하는 무례한 손님들이 가끔 나를 울려도 이런 단골손님들 덕에 웃고 다시 일할 기운을 찾았다. 언제나 사람에게 상처 받지만, 동시에 사람들로부터 가장 큰 에너지를 받았다. 학원에서 학생들을 만날 때나 카페에서 손님들을 만날 때나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어디에 가서 무슨 일을 하던 변하지 않을 사실이기도 했다. 


닿지 않을 안부이겠지만,

내게 적지 않은 에너지를 주던 그들에게 모든 순간 행복을 기원하며.

Wish you best of luck all the time. Take c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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