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위해 한 달 넘게 휴가를 냈다

2021.07.28

by 지노

※오늘의 글은 영상으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어깨 수술을 하셨습니다. 직장에 다니시며 집안일을 도맡아 하시다 보니 몸에 무리가 가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죠. 근육 쪽에 문제가 있으신 거였는데 계속해서 미루시다 끝내 이번 주에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주로 사용하시는 오른쪽을 수술하셨고, 세 달 동안은 보조기를 착용하셔야 하기에 일상생활이 많이 어려우신 상황입니다. 당장 당신께서 도맡아 하셨던 음식 준비도 하실 수 없는 상황이니까요. 해당 상황을 조심스럽게 지도교수님께 말씀드렸고, 감사하게도 흔쾌히 휴가는 필요한 만큼 다녀오라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세 달 내내 어머니 곁에 있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많이 어렵기에 우선 한 달 정도 휴가를 다녀오겠다 말씀드렸어요. 부끄럽게도 그 한 달이라는 기간을 말씀드릴 때까지 내면에서 꽤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요.


명목상으로는 휴가이지만 제가 맡아 진행하는 과제도 있고 다음 학기가 졸업을 준비해야 하는 학기이기에 마냥 쉴 수만은 없습니다. 물론 두 개 모두 다 마무리가 멀지는 않아서 완전 급박한 상황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또 상황이라는 게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저 손을 놓고 있기에는 하루하루가 매우 아까운 시간이기도 하죠. 그러다 보니 어머니와 집안일을 도와드리는 시간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평소 연구실에서의 생활을 유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침에 운동도 하고, 저녁에 일찍 자고, 실험 장비 없이 원격으로 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이나 논문 작업 등은 최대한 진행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요. 사적인 일 때문에 공적인 일에 큰 지장이 있어서는 안 되니까요.


커리어적인 부분만 고려한다면 사실 냉정하게 집에서 어머니를 도와 드리는 건 큰 도움이 안 됩니다. 학교에서 혼자 있었을 때는 신경 쓰지 않았던 여러 가지 문제들을 직접 해결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소모되는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로 인해 온전히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을 테니까요. 참 감사한 부분은 부모님께서도 만약 제가 이러한 이유 때문에 집에 오지 못했다 한들 충분히 이해해 주실 수 있으실 분들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가족이 참 소중합니다. 제가 성인으로서 올바로 설 수 있도록 해주는 커리어도 중요하지만, 굳이 경중을 따진다면 가족이 조금 더 중요해요. 때때로 정말 미운 순간들도 있지만 아무리 가족이라도 언제까지고 영원히 함께 할 수는 없기에, 매 순간 서로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더불어 가족이 살아가는 공간과 각자의 관계를 위해 애쓰다 보면, 평생에 걸쳐 내가 자라왔고 함께해온 공동체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안정감을 선물 받습니다. 커리어에서 느낄 수 있는 다소 자극적인 성취감과는 결이 다른 즐거움이죠.


커리어와 가족. 두 가지가 균형 잡힌 삶이 이상적으로 행복한 삶일 겁니다. 하지만 괜히 이상적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게 아니죠. 삶이 여러모로 참 얄궂다 보니 우리에게 종종 선택을 강요하는 것 같습니다. 커리어의 손해를 감수하며 가족을 위한 선택을 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던 저에게는 이번이 그러한 순간이었고요. 그래서 당분간은 가족을 더 중심에 두고 제 커리어를 한 번 끌어가 보려고 합니다. 분에 넘치는 욕심이라 한없이 힘들기만 할 수도, 그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겠죠. 다시 연구실로 돌아갈 때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지 잘은 모르겠지만 최소한 후회는 하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가족을 위해 커리어를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아도 괜찮은 지금의 상황에 충분히 감사하며 말이죠.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감정이 예민해도, 생각이 많아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