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친구와 오랜만에 연락이 닿았습니다. 안부를 물어보니 한 연구소에서 인턴십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약간 느낌이 싸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배신감이 느껴지더라고요. '내가 그동안 그렇게 힘들어하는 걸 거의 실시간으로 봐 놓고서도 대학원을 고민하다니, 그동안 내 얘기를 어떻게 들은 거냐'는 한풀이가 바로 튀어나왔습니다.
미안하게도 욕을 한껏 쏟아낸 후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박사가 아닌 석사과정 진학에 대한 고민이었고, 원래는 생각이 없었는데 인턴십을 하며 비교적 대학원 입학이 용이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결정적으로는 현 상황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것이 너무 막막하여 진학을 고민하는 중이라고 해요. 연구 분야도 자신이 그간 관심이 없지는 않았던 분야여서, 대학원에 가서 학위도 받고 네트워크를 통해서 취업에 대한 정보도 지금보다는 많이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동안 제가 힘든 모습을 너무 많이 보여 줘서 그런지 자신도 대학원이 너무 힘들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과, 대학원이 취업을 하고자 할 때도 좋은 길이 맞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인해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해주기에는 저와 상황이 너무 달랐습니다. 입학하려는 대학원 과정이나 각자의 상황도, 심지어는 가고자 하는 주된 목표도 무엇하나 맞는 게 없었죠. 더군다나 저는 학부 때 취업 준비를 해 본 적이 없어 대학원에 가면 정말 그 취업준비에 대한 어려움이 상대적으로 해소가 되는지, 아니면 준비를 할 때는 큰 차이가 없는지도 잘 알 수가 없었습니다. 분야마저 달라 소위 스펙이라는 관점에서 석사학위가 얼마나 큰 이점이 있을지도 말해 줄 수 없는 상황이었죠.
하지만 상황이 다르더라도 저는 대학원에 진학할 때는 연구를 제대로 경험해 보겠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석사과정으로의 진학은 더더욱요. 학위를 받은 후의 진로와 상관없이 대학원에 본질은 연구에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연구보다는 취업을 보다 염두에 두고 있던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주로 했습니다. 사실 대학원 자체가 취업에 얼마나 큰 도움을 줄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대학원은 연구를 하는 곳이고, 그곳에서 연구에 얼마나 제대로 부딪혀 보느냐에 따라서 학위의 가치가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부디 단순히 취업을 위해 학위만 받으면 고민들이 다 해결되리라는 안일한 생각으로는 진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이죠. 물론 절대적으로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최소한 시작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취업 준비보다는 괜찮겠지, 취업할 거니까 연구는 조금 대충 해도 되겠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차라리 바로 취업 준비를 하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런 상태로 진학하기에는 꽤나 긴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대학원 생활도 취업 준비만큼 자신의 미래를 위해 많은 것을 쏟아부어야 하는 시기이니까요.
이 밖에도 많은 넋두리를 했더니 일단 친구가 고개를 끄덕여주기는 했습니다. 상황이 너무 많이 달라서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요. 많은 것들이 같았다 한들 결정은 친구의 몫이기에, 제가 어떤 이야기를 했어도 그 결정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칠 수는 없을 겁니다. 다만 그래도 최소한 취업 준비보다는 대학원이 더 괜찮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과 안일함은 걷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조금 잔인한 것 같기도 했지만, 대학원에 진학했을 때에 마주할지도 모르는 혹독한 환경에 몸과 마음이 다 상하는 것보다는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훨씬 더 나을 테니까요. 무튼 그 친구가 알아서 잘 결정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만약 대학원을 가게 된다면 끝내 원하는 바를 이루고 많은 것을 배우되, 저처럼 지나치게 힘들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