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15
과 후배 친구들이 연락을 해 줘서 점심을 같이 먹었습니다. 그중 두 명은 같은 연구실에서, 다른 한 명은 다른 연구실에서 대학원 생활을 하고 있어요. 서로 근황도 나누고 소소한 농담도 주고받으며 꽤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점심 이후에는 한 선배가 연구 관련 실험을 도와줄 수 있냐고 연락이 와서 간단한 실험의 피실험자로 참여했어요. 이런 적이 처음은 아니었고 그쪽 연구실에서 해야 하는 실험에 사람이 부족하면 저에게 연락이 종종 옵니다. 그렇게 꽤나 긴 점심시간을 보내고 연구실에 돌아오니 오후 3시 정도가 되었어요.
오늘 마주한 사람들이 저와 엄청나게 가까운 관계는 아닙니다. 저만 그런 것은 아니고 아마 역으로 상대방도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후배들의 경우 평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같이 나눌 정도로 막역한 사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서로 필요하면 적당한 부담감과 함께 도움을 요청할 수는 있는 사이입니다. 실험을 도와 드렸던 다른 연구실의 선배도 그런 사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너무 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정말 가깝지도 않은, 그러다 보니 필요할 때만 찾게 되는 것 같은 관계인 셈이죠.
사람 간의 사이에 '필요할 때만 찾는다'는 수식어구가 붙으면 왠지 피상적이고, 계산적인 거 같고, 진심이 없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저도 그런 관계보다는 깊은 관계를 선호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필요할 때만 찾는 관계가 좋지 않거나 건강하지 않은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경험상 그런 관계들은 피할 수 없고, 때로는 정말 가까운 관계보다 더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저는 관계에 예민한 사람이라 누군가를 필요할 때만 찾지 않으려고, 더불어 누군가가 저를 필요할 때만 찾는 존재가 되지 않으려고 꽤 많은 애를 써왔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러려고 애써도 사람 사이의 일이다 보니 모든 사람에게 그러기는, 심지어 다수의 사람들에게 그러기는 불가능하다는 나름의 결론이 생겼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깊은 관계를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었어요. 사소한 이야기까지 나눈다는 것은 아무리 문자와 같이 쉬운 형태로 주고받는 것이더라도 시간을 쏟아부어야만 하니까요. 대략 생각을 해 보면 모두와 깊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시간이 무한정 존재해야 하는 셈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필요할 때만 찾는다는 거부감에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격하게 반응할 만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깊은 관계도 결국 상대와 가까워지고 싶다는 감정의 필요에 의해서 시작한 것이니까요. 그리고 저 또한 애써 의식하고 싶어 하지 않았을 뿐, 사람대 사람으로서 가까워지는 것보다는 단순히 그 순간에 상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니 제가 남들을, 반대로 남들이 저를 단순히 필요에 의해서 찾는다고 해도 크게 아쉬워할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그렇게라도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꽤 괜찮은 관계이지 아닐까 싶습니다. 모든 관계가 완벽하거나 늘 깊을 수는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