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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 May 09. 2022

답이 있다면 쉬운 문제다

쉬운 문제?

  꽤 오랜 기간 동안 학생이었고 지금은 사회 초년생이다 보니 앞서 깊은 경험을 갖고 계신 선배님들을 많이 만나 뵙게 됩니다. 당연히 그분들로부터 배워야 할 내용도 정말 많고요. 그런데 경력이 많으신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업무적으로 제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가 별거 아니고 쉬운 문제라는 투로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그럴 때마다 많이 서운했어요. '도대체 왜 그렇게 얘기를 하시는 걸까', '힘듦을 조금 인정해주시면 안 되는 걸까', '당신도 나와 같은 처지였다면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을까'. 억울함과 오기가 생기기도 하고 정말 궁금하기도 해서 한 번쯤 여쭤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도대체 왜 쉬운 문제라고 생각하시는 건지 말이죠.


  그때 한분께서 답이 있으면 쉬운 문제라는 대답을 해주셨습니다. 다른 분들도 비슷한 뉘앙스의 이야기를 해주셨던 기억이 있어요. 공학자의 시각에서는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 대답이었습니다. 어쨌든 풀면 풀리니까요. 시간이 많이 걸릴 수는 있어도 방법을 찾아서 풀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쉬운 문제라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자연스럽게 어려운 문제는 답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때로는 답이 없는 문제가 되는 셈입니다. 하긴 생각해보면 시간을 들여 문제를 풀고 있는데 어느 순간 풀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안다면, 그리고 내가 내린 답이 여러 가지 답들 중에 하나이고 최선의 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느낀다면 꽤나 갑갑하고 막막할 것 같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다고 한들 답이 있는 문제가 반드시 쉽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답이 있어도 그것을 풀어나가는 과정까지 쉽다는 보장은 당연히 없으니까요. 대부분의 사람이 치렀을 수능시험의 경우도 분명 답이 존재하지만 모두가 쉽게 풀지는 않습니다. 대학에 입학해서 마주하는 수많은 문제들도 답이 명확하지만 쉽게 맞출 수는 없죠. 답이 있는 문제를 마주하고 답이 있다고 판단하는 것, 그리고 그 답을 찾고자 능숙하게 풀이법들을 고민하는 건 결코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왠지 모를 억울함과 오기가 생겼었나 봐요. 누군가에게 쉽다고 해서 나에게 쉬운 건 아닌데. 지금 이 과정에서도 나는 충분히 애쓰고 있는 건데.


  한편으로는 답이 있는 쉬운 문제이니, 너무 겁먹지 말고 애쓰다 보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격려 차원의 말씀이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워낙에 똑똑하고 훌륭한 분들이시고, 당신들이 걸어왔던 길은 누구나 걸어갈 수 있다는 겸손함마저 갖추셨다 보니 그러한 방식으로 격려를 해주신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동시에 정말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사람들, 보다 크고 중요한 문제를 푼다고 평가받는 사람들은 문제의 난이도를 그렇게 구분하는가 싶었습니다. 그들이 가치 있다고 믿는 것은 많은 경우 시간을 들이면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정답이 없는 와중에서도 의미가 있기에 납득할 만한 답을 내놓아야만 하는 중요한 문제를 풀어내는 것이니까요. 감사하게도 뛰어난 분들과 함께 일을 하다 보면 가끔 이런 혼선이 빚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분들의 시각을 이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꽤나 즐거운 일이기도 하지만요.


※ 이 글은 영상으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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