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노 Nov 14. 2022

책임과 압박을 느끼고 있습니다

자발적 책임감

  어쩌다 보니 회사에서 꽤나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개발 중인 제품의 구동 시나리오 중 몇 부분을 제가 담당하고 있는데, 사실 신입으로서 이런 일을 맡을 수 있다는 게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다만 부담감이 엄청난 것도 사실입니다. 개발 중인 장비를 회사 내에서만 구동하면 모르겠는데 외부 기관들과 함께 하는 실험을 주기적으로 반복하고 있거든요. 제가 개발한 코드를 적용한 것이 이번이 두 번째인데, 지난번에 비해 기능상으로 크게 추가된 것이 없음에도 너무 진이 빠졌습니다. 무언가 조금이라도 잘 안 풀리면 제 탓인 것 같고, 잘 풀리더라도 제가 더 잘해야 전체적으로 발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지금의 상황에서 모든 책임을 제가 질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면 신입으로서의 기회가 맞지만, 조직의 입장에서는 큰 리스크를 이제 막 회사생활을 시작한 친구에게 떠넘긴 모양새니까요. 그래서 이 부담감을 제가 애써 이겨내며 어떻게든 해내야 할 당위성은 크지 않습니다. 온전히 제 입장에서만 바라보면 못 해내도 그만이고, 해내면 보너스처럼 좋은 상황이기에 신입으로서 좋은 기회라 느끼고 있는 거니까요.


  하지만 생각이 그렇게 흘러가지는 않더라고요. 과도한 부담감을 던져준 환경을 탓하는 게 썩 달갑지는 않습니다. 설령 환경에 문제가 있다고 해도 제가 직접 오롯이 환경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작은 부분이라도 저의 문제를 찾아내어 개선해내는 것이, 그리하여 누구에게나 떳떳할 만큼의 결과를 보이는 것 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 믿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너무 타이트한 일정 탓에 시간이 모자라 스스로가 확신을 갖지 못한 듯합니다. 검증에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는데 그러지 못하다 보니 테스트 내내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거죠. 이토록 긴장하고 진이 빠진 건 학위 심사 때가 그나마 비슷했던 것 같은데, 그 감정을 벌써 올해만 두 번을 겪었습니다.


  다행히 이번 실험은 큰 문제없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조차 다들 크게 강요하지 않는데도 자발적으로 이러한 압박감을 느끼는 게 건강한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건 제 타고난 성향이라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더 많은 책임을 지고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 사람들과 나누는 것을 크게 즐기다 보니, 보너스처럼 주어진 기회로써 보다 가볍게 느껴도 될 상황을 반드시 이겨내고 성장해내야 할 상황으로써 새삼 무겁게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아직 더 해내고 싶다는 에너지가 있으니 이 마음은 크게 바뀌지 않을 테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지금과 같은 큰 책임과 압박을 계속해서 마주할 테죠. 그것들에 준비를 해야 하는데 준비가 쉽지 않습니다. 아니, 애초에 준비가 가능한 영역이기는 할까 싶네요. 아마 아닐 겁니다. 그냥 받아들이고 이겨내면서 어떻게든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수밖에요.


※ 이 글은 영상으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설렘은 비싼 감정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