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노 Nov 07. 2022

설렘은 비싼 감정이다

설렘

  몇 년 전에 어떤 분의 페이스북에서 설렘은 비싼 감정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 말에 크게 공감되지 않았어요. 하고 싶은 것도, 하지 못한 것도, 궁금하고 신기한 것도 너무나 많은 시기여서 겪는 모든 일들에 설레거나 최소한 작은 기대감을 품을 수 있었거든요. 이렇게 사소한 것들에도 설렐 수 있는데 왜 비싼 감정이라고 말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나이가 점차 늘어날수록 설렐만한 일들이 많이 줄어들더라고요. 특히 회사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일상이 단조로워지고 예측 가능해지다 보니 크게 설레거나 색다른 일을 찾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무언가 조금 불편한 마음이 들기는 했어요. 돌이켜보니 저는 설렘이 사라지고 일상이 무던해지는 순간을 꽤나 걱정했었습니다. 저의 설렘 지수는 대학교 때 최고치를 찍었는데, 그 당시의 기록에 ‘이렇게 즐거운 순간이 끝나고 다시 찾아오지 않으면 어쩌지’라는 불안을 종종 내뱉었거든요. 결국 그 불안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꿈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기대되고 재미있는 경험들을 매 순간 겪어서였는지, 설렘 속에서의 일상을 벗어나는 건 정말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무엇을 해도 예전만큼 즐겁지 않고, 어떠한 계획을 해도 예전만큼 기대되지 않았습니다. 이미 다 어느 정도 겪어본 상황이고 느껴본 감정들이니까요. 시간이 지날수록 경험의 양이 늘어나니 설렘이 비집고 들어올 자리가 점차 줄어드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삶이 우울해질 필요까지는 없는 것 같아요. 설렘이 사라진 일상을 마주하고 받아들이기까지는 꽤나 괴로운 과정이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무던하고 때로는 크게 힘든 하루들이 당연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친한 친구와는 농담 삼아 매일 설레면 심장 쪽에 문제가 있는 거라고 말하기도 해요. 평소 설렘이 줄어들었다는 건 그만큼 일상에 안정감이 생겼다는 말과도 비슷하니까요. 이제 새로운 상황들을 마주하더라도 어느 정도 무던히 흘려보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경험이 쌓였다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설레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토록 가라앉길 바랐던 저의 예전 고민들을 떠올려보면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어요. 치열함과 다채로움에서 오는 설렘은 줄어들었지만 그렇기에 제 마음이 조금 더 평안해지고 성숙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갈수록 설렘이 비싼 감정이 되다 보니, 가끔씩 마주하는 설렘들이 이전보다 더욱 감사하고 즐겁습니다. 많은 것들이 흔들리고 고민되었던 이전의 에너지 넘치는 설렘들을 지나, 이제는 저의 중심을 갖고 받아들일 수 있는 잔잔한 설렘들로 그 모습이 바뀐 것 같아요. 그러니 빈도가 줄어든 것에 아쉬워만 하기보다, 설렘의 가치가 갈수록 높아진다는 것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다가갈 수 있어야겠습니다. 그동안의 경험이 주는 안정감과 새로운 경험이 선물해줄 설렘을 동시에 느끼기 위해서 그 정도 비용은 당연히 감수해야 할 거예요.


※ 이 글은 영상으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좋아하는 부장님이 퇴사하신다고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