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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 Oct 31. 2022

좋아하는 부장님이 퇴사하신다고 한다

부장님의 퇴사

  살면서 결이 맞는 사람을 만나는 건 귀한 일입니다. 특히나 학교가 아니라 사회에서 만나기는 더더욱 어렵죠. 그런데 감사하게도 최근에 저희 팀에 합류하신 한 부장님께서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그분의 나이대에 그토록 좋은 인상과 적극적인 따뜻함을 보이기는 정말 쉽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자칫 상대가 가볍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앎에도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사람을 대할 때의 좋은 태도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특히나 저는 이야기를 나눌 때 상대방이 선택하는 단어를 중요시하는데, 그런 점에서 부장님은 저와 결이 정말 잘 맞았습니다. 하는 업무가 달랐어도 서로 필요한 내용이 있으면 선뜻 알려주고, 업무 외적으로도 격의 없이 서로의 고민과 생각에 대해 나눌 수 있었던 좋은 선배님이자 동료였어요.


  한 가지 걱정되는 점은 지나치게 빠듯한 회사의 일정 때문에 부장님께서 많이 힘들어하셨다는 점입니다. 정신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육체적으로도 편찮으신 것이 눈에 확연히 보일 정도였어요. 끝내 직장인으로서는 그다지 길지 않은 몇 달의 시간이 지나서 부장님은 휴직을 결정하셨습니다. 대외적으로는 건강상의 사유로 인한 휴직을 말씀하셨지만, 제가 들은 바로는 이미 여러 가지 요인들로 거의 퇴사를 결심하신 듯하셨어요. 결국 제가 우려하던 일이 터지고 만 셈입니다. 빡빡한 일정 속에서 제 몸과 마음을 간수하는 것만으로도 버겁기는 했지만, 그것보다 힘들게 느껴진 건 혹시라도 좋은 팀원분들이 하나둘씩 떠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었으니까요.


  어쩔 수 없다는 일정 앞에 무력하게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는 마음은 꽤나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을 더 복잡하고 허망하게 만들 일이 생기더라고요. 부장님께서 공식적으로 팀원분들께 휴직을 알린 회의에서 전사 차원의 체육대회가 있으니 하루 일정을 내어 참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물론 말도 안 되게 빠듯한 일정이었기에 실장님은 몇 번이고 불참 의사를 밝혔지만, 끝내 대표님이 저자세로 수차례 요청한 탓에 어쩔 수 없이 수락을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허무했습니다. 야근과 주말 출근 모두 견딜 수 있었던 건 팀 전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목표에 도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강도가 상당했기에 팀원분들이 많이 지쳐 있었으며 끝내 부장님도 휴직 의사를 밝히신 것이었고요. 그런데 체육대회를 이유로 그 일정을 타협했습니다. 전사 차원에서는 당연히 중요한 일이기도 하고 어쩌면 단순하게 하루만 빠지는 것뿐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에게는 잔인한 일정의 당위성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부장님의 휴직, 어쩌면 퇴사 결정이 더욱 마음 아프게 다가왔어요. 그렇게 타협 가능한 일정이었다면 진작 수정하여 이런 상황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마음이 참 복잡합니다. 회사라는 곳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얽혀 있다 보니 다양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오늘처럼 저의 역량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일들 앞에서는 한없이 무력하고, 허망하고, 분노가 차오릅니다. 개인적으로 깊은 친밀감을 느꼈던 분을 상실하여 더더욱 마음이 아려옵니다. 분명 더 나은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요? 개인의 차원에서는 물론이고, 팀과 회사 차원에서 보다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지는 않았을까 곱씹어봅니다. 저는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따뜻한 선배님을 진심으로 마중 나가 드리는 것 이외에 제가 앞으로의 시간 앞에서 해야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 이 글은 영상으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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