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일상
잔잔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제 자신에 대해서도 조금 더 잘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지금의 상황도 충분히 만족하고 즐거운 것을 보면, 저의 행복은 어떤 성취와는 크게 관련이 없을지도 모르겠어요. 고등학교 이후의 저는 늘 무언가를 해내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고 그 목표를 위해 달려가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제가 달려왔던 것은 어떤 수준까지 올라가겠다는 마음이기도 했고, 단순히 새로운 것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호기심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건 제가 태초에 목표를 성취할 때 쾌감을 크게 느끼는 사람이어서는 아닌 것 같아요. 목표 자체보다는 그것을 쫓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새로운 감정적 자극을 더 원했던 듯합니다. 무엇인가를 위해 달려가다 보면 기쁨과 뿌듯함, 괴로움과 슬픔 등 양단의 꽤나 자극적인 감정들을 마주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요즘은 그런 게 없어요. 딱히 달려갈만한 이유도 의무도 없습니다. 회사일이 있지만 짓눌릴 정도로 버겁지는 않고, 운동과 같은 취미가 있지만 새로운 도전이라 할 정도의 강도는 아니에요. 그러다 보니 강하게 느껴지는 흥미로운 감정 없이 잔잔하면서도 조용합니다. 사실 다소 무미건조한 느낌이 들어요. 큰일이 없는 하루들이 이어지고 있어 평온하기는 하지만, 10년을 넘게 살아온 모습과는 정 반대이다 보니 낯설고 어색합니다. 그래서 성공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아요. 성공이라는 큰 목표를 쫓다 보면 다시금 여러 자극적인 감정들을 마주 할 테고 스스로 생생히 살아있음을 느낄 테니까요.
그렇지만 선뜻 그렇게 달려가지 않는 것을 보면, 분명 지금의 상태가 행복하기는 한 것 같습니다. 언젠가 유퀴즈에서 박보영 배우님이 ‘큰 일 없이 지나가는 하루가 가장 감사하다’는 말씀을 하신 기억이 납니다. 큰 감정이 밀려오지는 않지만 그렇기에 무던히 지나가는 하루들이 반복되고 있어 감사함과 행복함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언젠가 어머니와의 통화에서도 지금이 참 좋은 시기이니 이 여유를 즐겼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부모님도 건강하시고, 회사에서 큰 문제도 없고, 책임져야 할 가정이 있지도 않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크게 부담 가질 일도 없으니 말이에요. 그동안 수많은 감정에 휩쓸리며 파도 타듯 살아왔으니, 이제는 잠시 이런 평온을 누려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으로도 제 본성은 자극을 쫓으며 살아갈 것 같으니, 잠시 쉬면서 에너지를 모으고 때를 기다리는 것도 방법일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