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열등감
오늘도 크게 다를 바 없이 다시금 열등감에 휩싸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연찮게 제가 대학생 때 학교 신문에 기고했던 글을 다시 마주 했어요. 글을 보니 저는 대학교에 합격한 순간부터 꽤 오랫동안 왜 뽑힌 건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더라고요. 많은 사람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제가 왜 대학에 뽑혔는지를 묻고 다녔지만 답을 찾지 못했고, 잠시 고민을 미뤄둔 채 학교 생활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힘든 순간들마다 이 고민이 떠올라 제 자신을 괴롭혔다는 거였어요. 뭐가 잘나서 이렇게 좋은 학교에서 이토록 뛰어난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는 건지 괴로우면서도 부끄러웠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남들과의 비교가 익숙한 탓도 있었겠지만, 아무리 보아도 제가 그렇게 뛰어나거나 매력적인 사람은 아닌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그 당시의 저는 이상하게도 그 열등감 때문에 학교생활이 점점 더 좋아졌다고 고백합니다. 선배나 후배 할 것 없이 동경하는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며 어설프게나마 그들을 따라가고자 노력하는 게 쉽지 않았고, 심지어 그렇게 했어도 그들을 따라잡는 건 불가능했는데 말이죠. 아마 따라잡을 수는 없었지만 조금씩 성장해서 그랬던 게 아닐까요? 혹은 저에게 압도적인 열등감을 느끼게 할 정도로 멋진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 그 자체에서 살아 숨 쉬는 걸 느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어쨌든 그 속에서 이를 악물며 발버둥 칠수록 점점 더 괴로워졌지만 동시에 행복해지는 이상한 순환이 반복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기고했던 글은 당시의 주변 사람들과 앞으로 만날 사람들에게까지 감사를 표하며 마무리됩니다. 그 사람들을 각자의 치명적인 매력으로 저를 열등감에 몰아넣은 환상적인 인연들이라고 말하면서요.
지금이라고 한들 그때에 비해 크게 달라진 건 없는 듯합니다. 그 당시에는 대학생으로서의 자격을 고민했고 지금은 엔지니어로서의 자격을 고민하고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과거에 제가 열등감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대학생이라는 자격에 대해 큰 부담을 느끼지 않아서였던 것 같습니다. 대학생과 달리 엔지니어는 돈을 받고 있고 분명 그에 따른 성과를 내야 하니까요. 그래서 잘 해내지 못하거나 새롭게 배워 도전해야 하는 순간들이 다가오면 열등감을 더 크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건 그 누구도 저에게 강요하지 않았어요. 물론 책임감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래야 하지 않을까 하는 다소 과한 추측이나 당위성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그 압박감을 내려놓으면 다시금 대학생 때처럼 열등감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저보다 무엇인가 잘난 사람들이나 환경과 함께 한다는 건 즐거운 일이거든요. 욕심이 많은 만큼 못하면 괴롭겠지만 제가 부족하다는 것은 뒤집어보면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좀 더 나아가 보면 세상에 제가 못 하는 것이 많다는 사실도 꽤나 즐거운 일이에요. 반드시 잘 해내야 한다는 당위성이나 압박감만 벗어난다면, 아직 성장할 수 있고 배울 것이 충분하여 얼마든지 더 나아지고 새로운 걸 경험할 수 있다는 말이니까요. 열등감이 찾아왔을 때 불안감이나 조급해하기보다 성장할 가능성을 마주했다는 기쁨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어차피 저는 평생 부족할 거고, 매번 배워야 할 것이며, 조금씩 저의 쓸모를 찾아가는 여정을 앞으로도 계속해나가야 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