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대로 안 되는 회사일
닥치면 해결해
지금 회사에서 하는 일은 많은 부분이 불확실합니다. 아직 회사 자체의 체계가 잘 잡히지도 않았고, 저희 팀이 풀어야 할 문제들이 명확하지도 않고, 얼마나 많은 문제들을 풀어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아요. 물론 꽤나 긴 경력을 가지신 분들이 많이 계셔서 각자의 경험을 통해 길을 조금씩 잡아 나가고는 있지만, 그 경험들마저도 지금의 상황과 100% 맞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완벽한 나침반을 만들어 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일을 쳐내면서 지도를 그려가고 있습니다. 누구도 강한 확신을 가질 수 없고 누구의 계획대로도 일이 진행되지 않고 있어요.
어쩌다 보니 저는 바닥부터 시작하는 경험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대학생 때 프로젝트성으로 팀원들과 한 행사를 조직하거나 인턴을 할 때도, 대학원에서 새로 만들어진 연구실에 들어가 첫 연구를 시작할 때도, 지금 회사에서 하는 업무들도 거의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고 심지어 계획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시작하고 있어요. 그럴 때마다 몰려오는 건 '잘 안 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과 걱정입니다. 예전에야 잘못해도 큰 문제가 없었으니 그 부담이 크지 않아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계획을 세우고 실행했는데, 지금은 돈을 받는 일이고 제 커리어와 일상이 걸린 문제이니 그리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게 되어버렸어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경험이 훨씬 많으신 같은 팀원 분들께 지금의 상황에 대해 어려움을 털어놓았습니다. 제가 계속 물어보면서 방향을 잡아나가는 지금의 업무 방식이 최선인지, 아니면 경험 많으신 분들께서 확실한 길을 제시해 주시고 주니어인 제가 충실히 따라가는 것이 최선일지 고민된다 말이죠.
그 질문에 있어 지금 저의 방식이 최선이라는 답을 들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저와 함께 일하는 경험 많은 시니어분들도 비슷한 상황이었어요. 단지 차이가 있다면 그분들은 성공 가능성이 조금 더 높은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정도였습니다. 경험의 도움을 받아 확률을 높일 수는 있겠지만 완벽할 수 없기에 결국 문제가 터질 것을 감수하고 진행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어요. 최대한 잠재적 문제를 식별하려고 애를 쓰긴 하겠지만, 완벽하게 문제를 파악하는 것보다는 파악된 문제에 조금이라도 빨리 부딪쳐 보는 게 더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렇게 해도 어차피 터질 일은 터지고 배워야 하는 교훈이라면 언젠가 비용을 치르고 배워야 하니까요.
리스크 예상하고 대비하는 건 중요하지만 항상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빠르게 실행하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느낍니다. 특히나 지금처럼 기술과 시장의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시기에는 더더욱요. 다가가고자 하는 목표가 추상적 일수록, 아직 그 목표에 다가선 경험이 부족할수록, 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풀려고 할수록 그런 것 같습니다. 결국 그 어떤 사람이나 조직도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으니까 말이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눈앞에 닥친 것들에 두들겨 맞았을 때 쓰러지지 않고 버티는 것뿐이 아닐까 싶습니다. 회사일조차도 계획대로 되지 않네요. 물론 계획대로 되지 않으니까 더 재밌는 거겠지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