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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 Jul 24. 2023

친구들이 바라보는 내 모습

15년 지기

  오랜 친구들과 휴가를 왔습니다.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지내고 있었어요. 서로의 한풀이를 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모두가 다 힘들더라고요. 나이를 생각하면 또래 친구들이 모두 힘든 시기인 것 같습니다. 이제 막 사회에서 자리 잡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사람들이니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어요. 서로의 어려움을 같이 욕해주고 위로하며 술잔을 기울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인생의 절반을 넘도록 함께 해온 친구들이라 서로를 꽤 잘 아는 편입니다. 이야기 도중 제가 친구들과는 다른 기질을 갖고 있다는 주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어요. 친구들은 비교적 현실에 잘 적응하고 납득하는 편입니다. 말을 빌리자면 마치 흘러가는 강 위에서 튜브를 끼고 흘러가는 것 자체에만 집중한다고 합니다. 반면에 저에게는 튜브가 없다네요. 맨몸으로 역행을 하던 보다 빠른 흐름으로 나아가던 계속 힘을 주어 헤엄친다고 합니다. 자극이 없더라도 항상 애쓰고 있어야 하는 성격의 사람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고개가 자연스럽게 끄덕여졌어요. 목표가 뚜렷하지는 않습니다. 무언가를 꼭 얻어내거나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크지는 않거든요. 그냥 태생이 어떤 것에도 집중하지 않는 것에,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에,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는 시간을 마주하는 것에 괴로워하는 사람인 것뿐입니다.


  맞아요. 삶에 거창하거나 확고한 이유는 없습니다. 꼭 이루고 싶은 것도 해내야 할 것도 없고요. 단지 타고난 기질에 충실하여 살아갈 뿐이었고, 그러다 보니 무언가 특별함을 추구해야 할 것 같은 의구심이 생겼을 뿐입니다. 이제는 그것에 그다지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걸 알아요.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본연의 기질을 마음껏 펼치고, 수만 가지 희로애락을 선명하게 마주하는 것만이 전부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니 지금의 힘듦도 누구를 탓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저 세상에 자신을 표현하다 보면 마주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들 중 하나일 뿐이니까요.


  참 고마운 친구들입니다. 이토록 잘 이해하고 존중하려 애써주어서요. 나이가 들어갈수록 각자의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걸 실천하는 건 늘 어려운 문제입니다. 특히나 오랜 시간 함께했던 사람들에게는 긴장이 풀린 탓인지 무례를 범하기가 더욱 쉽습니다. 그러니 서로 다른 성향의, 어쩌면 일상과 가치관이 정반대일지도 모르는 친구들과 이토록 오래 만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거예요. 새삼스럽게 지금 이 귀한 인연들에게 충분히 감사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저는 여러모로 참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여러모로 참 운이 좋은 밤이네요.


※ 이 글은 영상으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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