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노 Oct 28. 2024

자유롭게 살고 싶다

동경하는 삶

  저는 생각보다 큰 욕심이 없습니다. 세상을 바꾸겠다던지, 돈을 정말 많이 벌겠다던지, 큰 명예를 누리겠다던지 하는 마음이 없어요. 열심히는 사는데 큰 꿈을 위해 살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어렸을 적부터 큰 꿈을 꾸라는 이야기를 참 많이 들어온 것 같아요. 세상을 바꾸었던 위인들, 크게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왜인지 모르게 그렇게 살아가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설렘과 호기심을 품은 적도 있었습니다. ‘혹시 나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라는 본격적인 착각을 하기 시작한 순간은 대학생이 되고 난 이후였어요. 돌이켜보면 과분한 기회를 받아 입학했던 환상적인 대학이었기에 충분히 그럴 만도 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없던 욕심이 생긴 것은 아니었지만요. 분명 그런 거창해 보이는 것들은 저와 거리가 멀었습니다.


  진심으로 동경했던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자유였어요. 알게 모르게 더 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무언의 메시지가 팽배했던 대학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은 더욱 빛났습니다. 무언가 독특해 보이고 세상을 신경 쓰지 않는 방랑자나 탕자의 느낌보다는, 주위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줏대를 지키며 살아가는 뚝심의 느낌이 더 강했습니다. 항상 굳건히 지켜내고 있는 본연의 모습이 있는 사람 말이죠. 그 줏대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는 그다지 상관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꿈을 위해 열성적으로 달려 나가는 사람들이나, 경쟁에서 벗어나 소박함을 만끽하는 사람들 모두 자유롭게 자신을 지키고 있었으니까요. 그런 사람을 동경해 왔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그래서 자유롭기 위해 저의 줏대를 단단하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보통 충분히 단단한 무언가는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지켜내기 쉬운 법이니까요. 제가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해내고자 애써왔던 가장 큰 이유는, 그럴 때마다 스스로의 줏대가 점차 단단해져서 자유로워지는 걸 느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러한 동경에 반해 최근의 저는 참 많이도 흔들렸습니다. 지금껏 정말 많은 기회가 주어졌고, 이에 감사함과 책임감의 무게를 온전히 느끼며 진중하게 살아가는 것에 의미가 있다 믿습니다. 그것이 저의 줏대이고 뚝심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무게에 짓눌려 몸과 마음의 건강이 무너졌습니다. 자유로움이 사라지고 무엇엔가 묶여버린 듯했어요. 저를 짓누르고 있는 책임의 크기를 온전히 받들어낼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일시적인 한계인지 앞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태생적 한계인지만을 고민하고 있었으나, 사실 그건 별다른 의미가 없었어요. 중요한 건 지금의 제가 실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제가 그 무게를 온전히 받아내지 못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무게를 내려놓지 못한 것은 끝내 잘 해내서 더욱 단단해지고 싶어서였을 거예요. 하지만 그 무게를 짊어지려 했던 것은 단단해지기 위함이 아니었다는 걸 기억해야만 했습니다. 저는 자유로워지고 싶었습니다. 고통과 번뇌에서 자유로워져 나 자신을 잘 지켜낼 수 있기를 소망했던 거였어요.


  사실 지금의 저는 충분히 자유롭습니다. 감내하기 버거운 책임으로 만들어낼 앞으로의 성취들이 아니어도 충분히 사랑할 수 있는 일상의 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개운하게 일어나는 아침을 사랑합니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도록 나 자신을 몰아붙여 운동하는 순간을 사랑하고, 멍 때리며 게임을 하는 시간을 사랑합니다. 매콤하거나 집밥 느낌 나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순간을 사랑하고요. 사랑하는 사람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사랑하고, 어질러진 것들을 저만의 규칙으로 단정하게 만들고자 청소하고 정리하는 일을 사랑합니다. 때때로 방문하는 새로운 공간에서의 색다른 공간감도 사랑해요. 도망치는 것이어도 상관없으니, 삶이 무겁고 힘들 때는 잠시 이런 소박한 순간들을 만끽해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소박하지만 저를 온전히 자유롭게 하는 그 순간들을 말이에요. 자유에는 대가가 따릅니다. 책임을 지고 성취를 이루어내는 것으로 대가를 치를 수 없다면, 부족한 듯한 소박함으로 돌아가 갖는 죄책감과 아쉬움으로 대가를 치러 자유를 사면 되는 일이었어요.


  아마 그동안 그래왔듯 세상으로부터 감사하게도 꽤 많은 바쁨과 도전을 요구받을 겁니다. 더 높은 것과 많은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가끔씩은 혼란스럽기도 하겠지만, 끝내는 제가 원하는 자유로운 삶으로 돌아오리라 믿습니다. 애써 살아가며 줏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고자 하는 이유는 자유를 위함이니까요. 책임을 온전히 견뎌내며 성취를 일궈내는 순간도 있을 테지만, 그건 제가 가장 원하는 것도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서도, 가끔씩은 잔잔하고도 소소한 만족감이 있는 저의 소박함도 자주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언젠가는 가진 것의 대부분을 잃어버리더라도 소박함만으로도 충분히 자유로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이 글은 영상으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하는 사람을 소홀히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