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나에게 미루는 것도 중요해

2020.10.07

by 지노

※오늘의 글은 영상으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제가 요즘 퇴근할 때쯤 되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내일의 나는 조금 더 똑똑할 거야'인데요. 이 '내일의 나' 버전은 '똑똑할 거야', '건강할 거야', '기분이 좋을 거야' 등의 버전으로 나뉩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해결이 어려운 문제를 마주하거나, 잠을 못 자거나 일이 너무 바빠 몸이 피곤할 때, 혹은 갑자기 어떤 사건이 터져 기분이 안 좋아질 때가 되면 여지없이 이 말을 되뇌고는 합니다. 일종의 미루는 습관인 거죠. 오늘 부족한 지력, 체력, 정신력, 그리고 감정까지도 내일의 저에게 떠넘기는 겁니다.


물론 몸과 마음이 비교적 괜찮은 순간. 출근을 한 직후와 오후에는 내일의 저를 절대 찾지 않습니다. 퇴근하기까지 너무나 많은 시간이 남아 있기도 하고, 그 순간의 저는 어제 제가 믿었던 내일의 저니까요. 그냥 최선을 다합니다. 어제보다 생생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출근하자마자 전날 세운 계획들을 열심히 해 내려고 노력하다 보면, 보통은 어제의 제가 떠넘긴 일들의 대부분을 마무리한 멋진 오늘의 제 자신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사 그렇게 쉽게 풀리지만은 않죠? 어림도 없습니다. 데자뷰처럼 어김없이 예상치 못한 일들이 최소한 하나는 찾아옵니다. 만약 그 날의 에너지를 다 쓰지 않은 상황이라면 최선을 다해 해결하고자 노력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또다시 내일의 저에게 넘깁니다. 다시금 '내일의 나는 좀 더 똑똑할 거야'라는 말을 중얼거리면서 말이죠.


운이 좋다면 수월하게 하루가 마무리되겠지만 그런 날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오히려 그런 날은 낯설고 불안하기 까지도 해요. '이렇게 순탄하게 지나가도 괜찮은 건가?' 하면서 말이죠. 특히나 대학원처럼 빡빡한 일정이 빈번히 반복되는 곳에서는 예상치 못하게 어려운 문제를 비롯해서 갑작스러운 체력, 감정, 정신력의 변동은 그냥 일상입니다. 그러다 보니 하루를 아무리 완벽한 컨디션으로 시작했다 하더라도 필연적으로 그날의 일들을 완벽히 마무리 못 할 가능성이 정말 높습니다. 그런 것들까지 고려해서 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계획도 완벽할 수는 없으니 내일에 저에게 미루는 수밖에요.


오늘 하루 정말 최선을 다했다면 내일의 나에게 미루는 것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항상 존재하기도 하고, 다음 날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것은 장기적으로 효율을 떨어뜨릴 뿐이니까요. 그래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것만큼이나, 내가 충분히 감당 가능한 정도의 최선의 수준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그 수준에 도달한 하루라면 아무리 많은 부족함이 내 눈앞에 보여도 미련 없이 내일의 나에게 미루는 게 현명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기계처럼 단순하지 않고 복잡한 생물이고, 인생은 단거리 달리기처럼 빠르게 끝나지 않고 마라톤처럼 길게 이어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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