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21
저는 학생의 신분으로 꽤 길게 살아오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식들을 배워오며 그 지식들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눈앞에서 직접 본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심지어 나름 실용적이라고 평가받는 수학과 과학을 배우고 있었는데도 말이죠. 배우고는 있는데 이게 실생활에서, 나아가 제 삶에서 어떤 도움이 되는지를 도무지 체험할 길이 없었습니다. 중고등학교는 물론이고 조금 더 좁아진 전공과목을 배우던 대학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대학원에 오고 나니 제가 그동안 배운 지식들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 연구를 하기 위해 하나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시스템을 만들 때 그냥 무작정 만들 수는 없으니 수학과 과학에 있는 원리와 논리를 바탕으로 만들게 됩니다. 이제야 이전에 배웠던 지식으로부터의 원리와 논리가 필요한 상황을 마주한 거죠. 그러다 보니 다시 전공책들을 찾아보며 이해를 조금씩 해나가기 시작했고, 그때가 되어서야 그 지식들의 중요성과 의미가 말 그대로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필요를 마주하고 나니까 약간의 후회가 밀려왔어요. '전공 공부 조금만 더 열심히 할 걸', '수학이랑 과학을 조금 더 깊게 고민해 보고 배워 볼 걸' 물론 과거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이 그 정도로 깊게 공부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지금 이 분야 연구를 할 줄 아무도 몰랐을 거고, 설령 옆에서 말해 줘도 제가 이렇게 직접 필요성을 느끼기 전까지는 분명 꼼짝도 안 했을 거니까요.
중학교 시절부터 나름 공부를 열심히 해오며 지금까지 살아왔지만 배우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재미있어서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즐거운 순간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 순간에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것이 공부밖에 없었고, 어른들이 공부를 열심히 해두지 않으면 겪을 어려움들을 얘기해주었을 때 꽤나 크게 공감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해 오긴 했는데, 제 몸을 불살라 가면서 혹은 즐겁게 하지는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만약 제가 그 필요를 조금만 더 일찍 경험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강연과 같은 형태의 단순한 말로써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내가 직접 지식을 사용하며 체험해보는 물리적인 경험을 통해서 말이죠. 만약 그랬다면 제가 공부를 조금 더 열심히 그리고 조금 더 즐겁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또 생각해 보면 그 필요를 느끼게 해주는 경험을 단기간에 더불어 의미 있게 전달해 주는 것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연히 지식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하고, 지식을 직접 의미 있게 쓴 경험이 있어야 하며, 그것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능력도 있어야 할 테니까요. 아마 과거로 돌아가도 그런 상황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는 사실상 없었을 겁니다. 그런 경험을 전달해 줄 수 있는 분들이 계시기는 할까 싶네요.
어쨌든 지금이라도 제가 배워온 지식의 존재 이유를 찾아서 다행입니다. 그저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스쳐 지나간 것들이 아니라 내가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기 위해 정말 필요해진 지식이 되었다는 게 참 감사하기까지 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무의미한 아쉬움은 남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대학생 때 공부를 조금만 더 열심히 했을걸 그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