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10
저의 친한 지인 중에 조형예술을 전공한 분이 계십니다. 대학생 때 했던 프로젝트를 통해 만난 분인데, 6개월 전부터 포항에 내려오셔서 작은 공방을 운영하고 계십니다. 공방에서 도자기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치는 수업을 하시는데 일종의 개인 사업을 하고 계시는 셈이죠. 오늘 기회가 되어 점심 식사를 함께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아무래도 제가 사업에 대해 궁금증이 많다 보니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도 여쭤보게 되었어요. 그런데 여타 제가 흔히 알고 있는 사업과는 달리 많은 돈을 버는 것에 큰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소소하게 자기가 배운 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본인이 힘들면 수업을 줄여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삶의 형태에 크게 만족하고 계셨어요. 어떻게든 먹고는 살 거라며 지금의 삶이 좋다는 말을 들으니 '이런 방식의 삶과 업도 존재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벌기 위해 돈을 포기하는 형태의 삶 말이죠.
압도적으로 돈이 많은 사람들을 제외하고, 보통의 경우에 돈을 많이 버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인 것 같습니다. 노동소득이 높거나 자본소득이 높거나. 저는 두 소득을 높게 가져가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시간이 없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노동소득은 본인의 시간과 에너지를 돈과 맞바꾸는 행위이니 그럴 수 있겠으나, 자본소득이 높은데 왜 시간이 없냐 라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자본소득에도 분명 시간이 투입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계속해서 내 시간과 에너지를 써서 자본이 소득을 낼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물론 능력이 충분히 뛰어나다면 그렇게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높은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을 유지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일정한 소득을 유지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시간을 소비하는 것은 필연적이기도 하고요. 그러니 자본주의의 형태와 흐름을 무시하고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에, 특히나 그 소득을 늘리기 위한 노력에는 반기를 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득을 통해 먹고사는 건 살면서 가장 중요한 문제이니까요.
다만 지인분과 대화를 통해 문득 마주한 사실은 스스로가 돈을 많이 버는 것에 대해서만 고민해보았지, 돈을 충분히 버는 것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특히나 정말 많은 돈을 벌고 그 순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많은 양의 시간을 희생해야 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던 셈이죠. 충분함을 알지 못해 소득을 늘리는 행위를 멈출 수 없다면 끝없이 시간과 돈을 맞바꾸며 내가 아닌 돈의 삶을 살아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좀 더 삶을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쓰기 위해 돈이 존재한다고 굳게 믿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들이 다 잡아먹힌 채로 돈만 많이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문득 무서웠습니다.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간을 희생해야 한다는 명제를 그동안 진지하게 고려하지 못했다는 게 말이죠. 돈을 많이 벌면 미래의 시간들이 보다 자유롭고 풍성할 수는 있겠지만, 그 미래의 시간이 희생해야 하는 현재의 시간보다 반드시 즐겁고 가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으니까요.
돈에 잡아먹히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진정한 인간다움이 물질적 자유에서 온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돈은 딱 제가 먹고사는데 어려움이 없을 정도면 됩니다. 그 먹고 산다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은 앞으로 계속 그려나가야겠지만, 어쨌든 중요한 선택들 앞에서 돈보다는 시간과 순간의 감정들에 더 가치를 두며 제가 생각하는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