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객들을 만나다!

박물관의 하루_ 4

by Jino

박물관 문을 열어 사람들에게 선보이기 전의 마음은 전시를 앞둔 작가의 마음과도 비슷할 것이다.

우리가 좋아서 수집한 소장품들, 그리고 우리가 꾸며서 그 소장품들을 진열한 공간.

우리가 좋아하는 만큼 사람들도 좋아할까? 이 하나하나의 소장품에 대해 우리만큼 관심과 흥미를 보일까?

우리는 소장품의 가치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두근거리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박물관이 문을 연 2015년 5월 1일은 금요일이었다. 본격적으로 관람객이 온다면 토요일인 2일이 될 것이다.

1538701_1698073457086982_4943021187149434135_n.jpg 전시대도 설명도 하나하나 우리 손으로 준비했다.


페이스북에 페이지를 만들고 헤이리 마을 사이트에도 박물관 개관 소식을 알리고 보도 자료도 냈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공간이 생긴다.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알기나 할까? 과연 얼마나 와줄까? 홍보는 제대로 했나?


드디어 5월 2일 토요일.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있을 뿐인데도 하늘이 가깝게 보였다. 아침부터 하늘을 자주 올려다봤다. 많이 움직이면 살짝 더울 정도로 적당한 기온에 맑고 쨍한 하늘. 어떤 일을 시작할 때 날씨가 좋다고 앞이 창창하고 날씨가 안 좋다고 앞이 암울하겠는가마는 사람 마음이 그런가. 다행히 그날의 날씨는 더없이 좋았고 덩달아 예감도 좋았다.


2일 토요일의 오전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담담히 점심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셨다. 박물관 앞 테라스에 있는 테이블에서 앞쪽에 있는 경기 영어마을 한 번 바라다 보고 하늘 한 번 올려다보며 여유를 누렸다. 쨍한 날씨는 빨래 말리기에만 좋은 게 아니었다, 행여나 생길 수도 있을 잔잔한 초조나 불안의 여지도 바짝 말려 주었다. 좋은 예감을 믿고 그저 그 햇볕을 감사히 즐겼다.


오후 1시쯤이었을까. 헤이리 9번 게이트 옆 박물관으로 오는 작은 언덕에서 사람들 소리가 났다. 저 멀리서부터 사람들 소리는 제법 이어졌다. 관람객들이 우리 박물관을 찾아오는 것이다!


헤이리에서 세계인형박물관을 찾기가 쉽지는 않다. 차를 이용해 박물관 바로 앞까지 온 관람객들도 있었지만 많은 분들이 걸어서 찾아오느라 땀을 뻘뻘 흘렸다. 박물관을 찾아준 관람객들에게 감사한 마음과 반가움이 함께 들었다. '이 인형은요~, 저 인형은요~'라며 신이 나서 인형에 대한 설명을 했다. 전시관에서는 인형 하나하나 자세히 설명할 수 있었는데 상대적으로 많은 관람객들이 있으니 그렇게 하기는 힘들었다.


어쩔 수 없이 보편적인 관심을 얻을 수 있는 마트료시카와 걱정인형, 탑시터비(topsy-turvy) 인형(한 몸통에 위아래 반대 방향으로 두 개의 캐릭터가 있는 인형. 보통 치마를 입고 있는 인형을 뒤집으면 원래의 인형과 상반된 성격을 가진 인형이 나오는 형식을 하고 있다.) 등 몇 가지 인형으로 설명을 한정했다. 박물관의 가치를, 우리 박물관에 있는 소장품들의 가치를 최대한 알리고 싶건만 한계가 있으니 박물관을 찾는 이들이 '설명이라도 많이 읽어봤으면'하는 바람이 들었다.

인형만들기 체험에 열중하는 관람객들.


인형박물관의 인형은 어린이들이 흔하게 만나는 장난감 스타일은 아니다. 그래서 내심 어린이들이 이 인형들을 좋아할까 궁금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인형을 좋아했다. 집에 있는 천 인형처럼 마구 만지고 놀 수 있는 게 아닌데도 어린이들은 박물관에 전시된 인형들을 친구처럼 대했다. 익숙하게 인형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마리오네트처럼 움직이는 인형을 보고 겁먹거나 놀라기도 했다. 인형을 무생물의 인형으로 대하는 어른과는 사뭇 다른 모습인 것이 신기하고 놀라웠다.


어린이들이 박물관을 어떻게 즐길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어린이들을 위해 마트료시카를 열어볼 수 있도록 해두었는데 이 단순한 활동을 어린이들은 좋아했다. 그저 마트료시카를 열고 닫고 반복하면서 빠져들었다. 박물관에서 인형을 더 친근하게 느끼길 바라며 직접 마트료시카를 만드는 체험, 천에 그림을 그려서 손에 끼워 움직일 수 있는 손인형, 한 땀 한 땀 바느질 해 솜을 넣어 고전적인 인형을 만드는 헝겊인형 체험 등을 준비했고 특히 어린이들의 호응이 컸다.


박물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찬찬히 인형들을 둘러보며 감상하는 관람객들, 인형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더러 살짝살짝 만져보느라 1시간을 훌쩍 넘기는 관람객들도 있었지만 의외로 빨리 휙 둘러보고 가는 관람객들도 있었다.


"이 인형들을 다 모으신 거예요?""이렇게 많은 나라 인형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처음 봐요."라고 말하면 괜히 반가웠다. 인형들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너무 예뻐요, 너무 좋아요."를 반복하는 관람객들도 있었다.

11150754_1699388973622097_2630753220482563047_n.jpg 박물관의 창가에는 분위기에 어울리는 인형들을 진열했다.


수치를 계량화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우리 사이에는 연결되어 있어 통(通)한 것이다. 인형의 특징이라거나 상태, 혹은 어느 한 나라의 문화적 특성 등만 가지고 긴 시간 대화를 지루한 줄 모르고 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을 받기도 했다.

"이거 비싼 거죠?"

"여기서 제일 비싼 건 뭐예요?"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의문이지만 그런 질문이 내게는 좀 낯설었다.

우리가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인형을 수집하다가 가격이 나가는 인형을 만난 경우는 있지만 비싸고 아니고는 일단 뒤의 일이었다. 우리가 가지지 못한 나라의 인형, 우리가 몰랐던 풍속을 담은 인형, 새로운 종류의 인형 등에 대해서 욕심을 내고 궁금해한 적은 많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비싼 거나 하진 않다고 답하다가 억울해졌다.

비싸지 않다는 표현으로는 인형들의 가치가 폄하되는 것 같았다. 나는 어느새 이렇게 대답하고 있었다.

"가격이 비싼 거나 한 건 아니고 귀한 것들이에요."

어떤 인형은 내가 발품을 팔아 겨우 구하기도 했고 또 아프리카의 어떤 인형은 아는 분께 부탁해 간신히 구하고 또 어떤 인형은 베트남의 내 친구가 이곳저곳 수소문해서 구해주고...

돈을 준다고 해도 구할 수 없는 것들, 그 소장품 하나하나에 인형의 역사는 물론 우리의 기억이 깃든 것들이니 말이다.


물론 이렇게 질문을 한 관람객이 가격만을 가치로 따져서 그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개 귀한 것은 비싼 것으로 여겨지는 우리 문화가 반영된 질문이 아닐까 싶었다.


세계의 인형을 수집하고 연구해 세계인형박물관을 준비했다. 그리고 이제 관람객들을 만났다. 관람객들과의 만남은 우리가 박물관을 준비하면서 기대했던 이상의 반응을 보여주기도 하고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짚어주기도 했다.


관람객들과의 만남으로 박물관은 비로소 박물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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