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이라는 언어

박물관의 하루_ 6

by Jino

"혹시 어디에서 오셨어요?"
한국 사람과 닮았지만, 한국인은 아닌 게 확실하고 영어와 낯선 외국어를 섞어 쓰던 4인 가족이 왔다.

어떻게 안내를 해야 할지 몰라 결국 어정쩡한 영어로 물어보게 되었다.

"사하공화국(Republic Sakha) 알아요?" "네, 들어봤어요. 굉장히 추운 곳이죠?"
이 가족도, 나도 영어가 썩 유창하지는 않아 짧은 영어로 간단한 대화를 이어가며 사하에 대해 듣게 됐다.

사하공화국. 야쿠티아(Yakutia) 공화국이라고도 하는 이곳은 러시아 동시베리아 북서쪽에 있는 아주 추운 나라로 겨울이면 영하 50도까지도 내려가고 영토의 40%가 북극권에 속해 있다. 사하는 이곳에 사는 민족 야쿠트(Yakut)인들을 이르는 다른 말이기도 한데, 투르크 계통의 유목민족이 13세기부터 이주해와 살았다고 한다.

외모가 우리나 몽골 사람과 비슷해 보이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박물관의 인형 하나하나를 꼼꼼히 행복한 모습으로 감상하시던 어머니가 자신을 소개했다.
사하에서 인형을 만드는(puppet master) 아이다 이바노바(Aita Ivanova)라고 했다.
인형을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다 했더니 인형을 만드는 작가였던 것이다.

사하공화국의 인형들은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해서 질문을 했다. 그리고는 우리는 오래된 친구처럼, 소녀처럼
아이다의 휴대폰 속 인형 사진들을 함께 보았다. 그녀의 휴대폰 속에는 다양한 인형들의 사진이 있었다. 그녀는 사하공화국 인형뿐 아니라 외국 사이트에서 찾은 다른 나라의 인형들도 많이 저장해 두고 있었는데 거짓말처럼 내 컴퓨터 속 인형 사진들과 겹치는 인형도 많았다.

160723.jpg 사하공화국에서 온 아이다와 함께.


아이다를 통해 알게 된 새로운 사실. 사하공화국의 전통 인형 중에도 얼굴이 없는 인형들이 있다는 것이다.

세계에는 얼굴 없는 인형 종류가 몇 가지 있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옥수수 껍질 인형, 도미니카 공화국의 클레이 인형, 미국 아미쉬 인형, 그리고 독일 발도르프 인형까지는 알고 있었다. 저마다 조금씩 다른 이유로 얼굴 없는 인형을 만들고 있다. 사하공화국의 얼굴 없는 인형은 다른 종류의 얼굴 없는 인형들과는 달리 주술적으로 많이 쓰인다고 한다. 사하공화국의 얼굴 없는 인형이 어떤 용도인지 정확히 들을 순 없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경우 천으로 만든 인형에는 얼굴을 그려 넣지 않는 풍습이 있다. 자칫 얼굴을 그려두면 나쁜 혼이 깃들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사하공화국도 이와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 추측은 해보지만 아직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아이다는 사하에 동물뼈로 만든 장난감도 많다며 보여주었다. 신기했다. 고대 로마에서도 동물뼈를 장난감으로 썼다는 기록이 있었는데 사하는 지금도 그렇다는 것 아닌가.

나는 사하공화국의 다른 인형 작가들이 만드는 인형을 아이다의 휴대폰 사진을 통해 볼 수 있었다. 구체관절 인형 형식에 얼굴이며 머리카락이 멋스러운 아이들이 많았다. 사하에서도 인형 만드는 기술이 꽤 뛰어남을 유추할 수 있었다. 아이다의 휴대폰에서 언뜻언뜻 사하공화국 풍경과 사람들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너무 춥고 너무 멀어 가고 싶단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사하공화국, 아이다를 통해 조금 알게 되었다고 이것저것 궁금해졌다. 사하어를 쓰는 아이다와 한국어를 쓰는 나, 서로 영어를 조금 하는데도 인형 이야기를 하는데 어려움은 별로 없었다. 우리는 이메일 주소를 나누며 이별을 아까워했다. 내가 언젠가 사하공화국을 가고 그래서 아이다를 만나게 될 줄 또 누가 알겠는가.


인형은 우리를 이어주는 하나의 언어였다. 춤을 추는 사람들은 춤으로 소통하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은 노래로 소통하듯이 아이다와 나는 그저 인형을 소재로 꽤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형은 그렇게 아이다뿐 아니라 다른 많은 나라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했다. 싱가포르에서 혼자 여행 온 젊은 여성은 여러 나라 인형에 대해 이런저런 질문을 하더니 싱가포르는 인형이 다양하지 않다고 아쉬워했다. 나도 싱가포르 인형을 많이 볼 수 없었다고 함께 안타까워했다.


러시아에서 온 대학생은 20피스의 마트료시카에 그려진 그림이 무슨 이야기인지를 간략하게 설명해 주는가 하면 인도에서 온 남성 관람객은 방글라데시 인형이 입고 있는 사리를 보며 반가워했다. 사리를 입은 여성 인형이 몸에 두르고 있는 장신구가 16개에 이른다고 알려주기도 했다. 일본에서 온 한 학생은 일본의 히나 인형을 보며 자신의 집에도 히나 인형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인형에 관한 많은 것들은 이야기를 나눌 매개가 된다. 이럴 때 '인형'은 서로를 이어주는 특별한 '언어'가 된다.


#브런치북 #지오리포트 #박물관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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