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의 하루 _ 15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항일 독립투쟁을 위해 일생을 바친 백범 김구 선생의 '문화 국가론'이다. 나라의 앞날을 이렇게까지 멀고도 높게 내다본 그 혜안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부력과 강력에 큰 욕심을 가지지 않고 문화의 힘에 주목한다는 것이 그 시대에 가능했다는 것이 놀랍다. 김구 선생이 계속 나라를 이끌었더라면 우리 역사는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너무나 흔하게 쓰이고 많은 단어의 뒤에 따라다니는 단어, 문화. 이 문화에 관한 정의는 여러 갈래로 나뉠 수 있겠다. 박물관이 일터가 되면서 '문화'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나는 언론사와 인터넷 쇼핑몰, 인터넷 언론을 거쳐 박물관에서 일하게 되었다. 언론사와 인터넷 언론도 비교적 문화적이지만 박물관은 정식 문화예술기관이다.
일터의 분위기도 사뭇 다르다. 언론사는 개인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재량권이 크고 일의 만족도도 높지만 긴장감 역시 높다. 내가 뭘 실수하지는 않을까. 이건 팩트가 맞는가, 혹 오보를 내진 않을까, 내 기사가 다른 사람의 명예를 회복하지 않을까. 내가 한 일의 보람만큼 조심할 부분도 많다.
인터넷 쇼핑몰은, 문화 상품을 취급했고 규모도 작았기에 감히 내 경험만으로 일반화시킬 수 없지만 고객의 반응에 대한 긴장감, 일을 제때 해야 하는 구속 같은 것들이 있었다.
박물관에서의 몇 달이 지나면서 내가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긴장감 없이' 대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물론 신문사나 인터넷 쇼핑몰이라고 해서 모두 긴장해서 만나는 건 아니지만 박물관에서는 외부의 조건에 의해 강제되는 긴장감이 없다.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들에게는 이 공간의 전시품들을 잘 소개하면서 서로의 관심사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박물관 행정과 관련된 누구를 만나도 긴장할 일도 긴장할 필요도 없다. 누가 누구를 지적하지도 비난하지도 않는다. 어느새 느긋하고 여유로워진 나를 느낀다.
이쪽에서는 이쪽 이야기를, 또 상대 쪽에서는 상대 쪽 이야기를 하면 서로의 입장을 듣고 그저 맞추고 조율할 뿐이다. 더없이 조용하고 평화로운 일터의 분위기다. 물론 문화기관의 숙명처럼 경영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래서 박물관 종사자들이 모이면 '이익 추구와는 거리가 먼 삶'에 대한 자부심이 자조감과 평행을 이룬 대화가 단골 메뉴가 되기도 한다. 박물관은 '사람들의 문화에 대한 사랑'이 낳은 공간이기도 하다. 과거와 현재,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 다양한 문화의 영역에 대한 탐색이 탄생시킨 결과물이다.
어떤 사회를 '문화적'이라고 할 때의 '문화'는 그래서 '수평적인 구조'를 전제로 한다. 위계 없이 평화롭게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각자의 영역에서 자신의 색깔을 맘껏 드러낼 수 있을 때, 그 공동체는 비로소 '문화적'인 분위기가 되는 것이다.
우리 사는 공동체의 다른 영역에서도 이런 분위기라면 백범 선생이 이야기하는 '높은 문화의 힘'은 우리의 것이 될 것이고 그때 우리는 다른 어떤 부유한 나라도 힘이 강한 나라도 부럽지 않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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