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의 하루 _ 14
박물관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알게 되는 뜻밖의 사실들이 있다.
한국 사람들이 인형에 아직 그다지 친숙하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 젊은 사람들은 인형을 좋아하지만 중년만 돼도 인형을 꺼려하는 사람이 많다. 왠지 무섭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의 인형 문화는 그다지 발전하지 않았다. 짚으로 만든 인형 몇 가지가 풍습으로 전할 뿐, 인형과 관련된 풍습이 많지 않다.
중국과 일본의 인형 문화가 아주 발달한 것에 비하면 두 나라와의 교류가 활발했던 한국에서의 인형 문화가 특히 발달하지 않은 점은 언젠가 다시 살펴보고 싶은 대목이다.
또 다른 사실은, 어르신들 중에 인형을 좋아하시는 분이 많다는 점이다.
개인적 추론이지만 나이가 들면 꽃을 좋아하는 것과 비슷한 작용인 듯하다. 알록달록한 세계의 인형을 보며 예쁘다고 한참 바라보시는 분이 의외로 많다.
박물관에서 어르신들이 계시는 요양원으로 마트료시카 인형 체험 진행을 위해 몇 번 간 적이 있다.
어르신들이 섬세하게 만들기 힘드니 얼굴은 미리 다 색칠을 하고 마트료시카의 디자인도 색칠하기 쉽도록 간단하게 칠했다.
사실 처음 어르신들과 마트료시카 체험을 할 때는 우려스럽기도 했다. '어르신들이 잘 하실 수 있을까?''잘 하진 못하더라도 좋아하시긴 할까?''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진 않을까?'
모든 게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기우였다. 어르신들은 의외로 이 마트료시카를 무척 좋아하셨다.
요양원에 계시는 어르신들은 평균 연령이 높다. 70대는 젊으신 편이고 80대, 90대도 많다.
붓질이 생각대로 안돼 속상해하시는 어르신도 있었지만 물감을 칠하면서 색이 이쁘다고 인형을 두고두고 바라만 보시기도 했다.
"이 인형 내가 가지고 가는 거야?"라고 재차 물어보시며 "그렇다"라고 말씀드렸더니 소녀처럼 좋아하기도 하셨다. 어떤 어르신은 "내가 만든 거 이거야, 꼭 갖다 줘야 해."라며 강조하셨다.
알록달록 색을 칠해 예뻐진 인형이 좋으신 것 같았다.
한 요양원에서 만난 어르신은 색을 예쁘게 골라 쓰셨다. "너무 예뻐요, 어르신!"이라고 말씀드렸더니 "내가 옷 짓는 일을 했거든."라고 하신다. 그리곤 이내 속상하신 듯 "근데 손이 영 말을 안 들어 밉게 됐어."라고 덧붙이신다. 우리 눈엔 예쁜데 더 예쁜 인형을 원하시는 듯했다.
또 다른 어르신은 눈에 보이게 행복한 표정으로 붓질을 하셨다. "예뻐요! 잘 그리셨는데요?"라고 말씀드리니 "진짜? 내가 어릴 때 꿈이 화가였어. 집이 가난해 될 수가 없었지." 사람에게 꿈이란 게 뭘까. 어르신은 이렇게 화가와 비슷한 체험 만으로도 이미 다 꿈을 이룬 듯한 표정이셨다.
한 어르신은 물감을 칠할 생각은 않으시곤 종이 팔레트에 짜 놓은 물감만 한참 바라보셨다. "왜 칠 안 하세요?"라고 여쭤봤더니 "응? 색이 너무 고와서. 그냥 보기만 해도 너무 고와서."라고 하신다.
어르신들은 아이만큼이나 인형을, 세상의 예쁜 것들을 좋아하신다.
이렇게 어르신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하고 시간을 함께 보내기 전까지는 몰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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