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의 하루_13
박물관 문을 열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4명의 아이와 2명의 어른 관람객이 왔다.
아이들의 경우 한 가족이 다른 집안의 아이들과 함께 오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그런 경우일 거라고 짐작했다.
그런데 무려 4남매를 둔 엄마였다. 다섯 살부터 초등학교 5학년까지 였던 것 같다. 아이들은 마트료시카 체험이 하고 싶다고 했다.
박물관에서의 마트료시카 체험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 나는 아이들이 천천히 하더라도 아크릴 물감을 이용해 꼼꼼히 제대로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부모와 같이 만드는 것도 장려하지만 아이들끼리 만드는 것을 더 권하는 편이다. 아이들은 혼자 있으면 잘 해내면서 부모가 옆에 있으면 어리광을 피우는 경향이 좀 있어서다.
마침 4남매나 되고 해서 엄마에게 권했다. "아이들끼리 만들 수 있으니까 어머니는 2시간쯤 나들이하고 오셔도 됩니다." 엄마가 뜻밖이라는 듯 깜짝 놀랐다. "어머, 진짜요? 그래도 돼요? 아, 울컥해!" 더 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나는 엄마의 심정을 백번 헤아릴 수 있었다.
아이 한 명, 두 명 키우기도 힘든데 네 명이라니... 엄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더 안심시켜드리고 싶었다. "네, 그럼요.. 아이들 잘할 수 있어요. 또 제가 옆에 있을 거니까요.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재미있게 시간 보내고 오세요." 엄마는 발걸음도 가볍게,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은 듯 박물관을 나갔다. 나랑 마트료시카 만들기에 열중한 아이들은 엄마를 특별히 찾지 않았다.
한 번은 8개월 아이를 데리고 온 부부가 있었다. 그냥 박물관에 왔는데 엄마가 마트료시카를 너무 만들고 싶어 했다. 그러면서도 살짝 망설였다. 아주 어린 아기와 와서 엄마 혼자 만들려고 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무조건 마트료시카를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아이의 아빠도 같은 생각이었다. 우리 두 사람은 엄마가 안심하고 마트료시카를 만들 수 있게 응원했다.
아이 아빠는 부인이 마트료시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옆에서 조용히 아기를 돌봤다. 아기를 안아주고 놀아주고 그러면서도 부인이 체험하는 것을 보면서 격려해줬다. 세상의 많은 아빠들이 저만큼이라도 엄마를 이해해 주면 육아는 그나마 덜 힘들 텐데.
누군가의 딸로도 살았고 누군가의 엄마로도 살아온 내 눈에 이 부부의 사랑이 그렇게 좋아 보였다. 아기를 키운다는 이유로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많은 엄마의 심정을 알고 지지해 주니 말이다. 살아보면 부모가 됐든 배우자가 됐든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꿈이며 성취욕구를 꺾는 건 은근 잔인한 일이다 싶다. 이 엄마는 멋진 마트료시카를 만들었고 딸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이라며 기뻐했다. 옆에서 보는 나도 마치 내가 만든 것처럼 뿌듯했다.
'아이를 키우는 데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을 누구나 인용하는 요즘이지만 실제 아이를 키우는 엄마 옆에 그런 마을은 없다. 답답한 엄마들이 만드는 경우는 있어도.
2년 전, 경기문화재단의 <낮달 문화소풍>이란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몇 군데의 지역아동센터와 함께 한 적이 있었다. 지역아동센터는 지역의 어린이와 청소년이 방과 후에 와서 숙제도 하고 공부와 놀이를 함께 하고 있었다. 센터마다 분위기가 다르긴 했지만 내게는 그 형태가 이상적으로 보였다.
학원을 다니며 사교육을 하지 않아도 언제나 동네 친구와 어울릴 수 있고 같은 나이끼리만 어울리는 게 아니어서 오히려 더 좋아 보였다. 동네마다 정부의 지원으로 시설이 훌륭한 지역아동센터와 도서관, 그리고 넓고 안전한 놀이터만 잘 갖춰져 있어도 아이들 키우기가 훨씬 좋지 않을까.
1년 전부터 지역아동센터에 혜택이 돌아가던 이 프로그램마저 폐지됐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들은 쏟아져 나오는데 그게 피부로 느껴지기까지는 얼마나 걸릴는지.
이 땅의 모든 엄마들을 응원합니다!
#브런치북 #박물관의하루 #지오리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