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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라고 말하는 순간 '실패'.

박물관의 하루 _ 16

by Jino

지난 주말, 다섯 살 서윤이가 엄마랑 함께 왔다. 손인형을 만들고 싶어 했다.

다섯 살인데도 자신이 만들고 싶은 인형에 대해 똑 부러지게 말했다.

"머리는 어떻게 할까?""옷은 무슨 모양으로 할까?" 서윤이의 부탁으로 스케치는 엄마가 했다.


엄마는 서윤이의 기대에 찬 시선을 받으며 정성스럽게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는 손인형 천에 그림을 그려나갔다. 옷에도 꽃무늬며 장식을 그려 넣어 서윤이가 많이 칠할 수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물감 색의 감각을 즐기고 느끼며 색을 칠해나가던 서윤이는 엄마가 그려놓은 그 무늬와 장식들 위에

자신이 좋아하는 색을 칠하고 또 칠했다. 엄마가 그려놓은 무늬와 장식들이 서윤이의 짙은 색 물감 아래 사라져 버렸지만 엄마는 진지하면서도 자유분방하게 칠해 나가는 서윤이의 손길을 존중했다.


서윤이는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자신의 감각을 따라 경쾌하게 붓질을 했고 엄마도 아빠도 함께 그 붓질을 응원했다.


인형 만들기가 중반쯤 이르러 이제 엄마가 눈을 막 그려 넣었을 때다.

"코를 그려줘야지~." 너무나도 경쾌한 목소리로 나비처럼 가볍게, 그리곤 순식간에 서윤이의 붓이 눈 아래 가운데 부분에 커다랗게 초록색 칠을 한 것이다.


엄마와 아빠와 나는 한순간 깜짝 놀라 어쩔 줄 몰랐다. 코도 꽤 크게 마치 부채를 펼쳐 거꾸로 놓은 것처럼 서윤이의 초록색 코가 그려져 있었다. 엄마가 그려놓은 예쁜 눈 아래쪽으로 코가 마치 수염처럼 그려져 있으니 난감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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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서윤이의 엄마 아빠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게 여기면서 예쁜 코를 또 그려 넣었다. 조그맣게 오므린 작은 입까지 그려 넣으니 인형은 이제 거의 완성이 되었다.


막상 인형을 다 만들고 보니 서윤이가 그려 넣은 개성 넘치는 코 덕분에 손인형의 분위기는 뭐랄까 조금 더 동화 주인공 같은 느낌을 주었다. 초록빛이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평범한 얼굴이 되었을 인형이 서윤이의 그 날렵한 붓질이 넣은 초록빛 덕분에 조금 더 신비스럽고 오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내가 이 독특한 인형을 실패라고 섣불리 단정할 뻔했다.

이 경우 실패는 도대체 누구의 판단일까.

서윤이가 이런 결과까지 예상하고 만든 것은 아니었다고 해도 인형을 만드는 도중 누군가의 판단으로 '실패'라는 말이 입에서 나왔다면 우리는 어쩌면 즐겁자고 시작한 우리 모두의 시간을 망치고 이렇게 독특한 인형도 만나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인형 만들기 시간을 갖다 보면 그럴 때가 많다. 특히 의욕도 높고 감각도 뛰어난데 자신의 실력이 생각만큼 안 따라주는 사람의 경우가 더 그렇다.


"아, 망쳤어!"

이 말을 입에 내는 순간이 실패하는 순간이다.

말 한마디의 힘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내가 망쳤다고 말함으로써 나는 그 일을 더 진행해 나갈 의욕을 잃게 되고 그때까지 공들여 만든 인형도 졸지에 실패작이 되는 것이다.


인형을 만들다 보면 선 하나 잘못 그을 수도 있고 바느질을 잘못할 수도 있고 색을 엉망으로 칠할 수도 있다.

선을 잘못 그리면 지우고 다시 그리면 되고 바느질을 잘못했으면 바느질을 더 촘촘하게 해주든가 그것도 힘들면 뜯어서 다시 바느질을 해주면 된다.

색칠도 잘못했으면 덧칠을 해주거나 다른 색으로 보완을 해주거나 처음의 의도와 조금 다르게 만들어도 된다.


인형 만들기는 소소한 경우다.

우리네 인생에서야말로 '실패'라는 섣부른 규정은 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일이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일찍 내린 '실패'라는 결론은, 실제 일의 경과보다 그 '실패'라는 섣부른 판단으로 인해 진짜 '실패'하게 되기가 싶기 때문이다.


서윤이와 서윤이 가족이 내게 깨우쳐 준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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