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근 관람객들

박물관의 하루 _ 11

by Jino

지금은 집에 고양이를 키우기도 하지만 이런 내가 아직 익숙하지 않을 정도로 원래의 나는 개와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무서워했다.


사람의 고유한 많은 부분도 시간이 지나면 바뀌는 것 같은데 나의 개와 고양이에 대한 태도가 그렇다. 예전 동교동 전시관에 있던 시절부터 시작됐다. 전시관 앞 테라스가 널찍했던 그곳에는, 고양이 중에서도 눈썰미 좋았던 홍냥이가 자주 찾아왔고 어느 추운 겨울날 나를 애절하게 쳐다보면서 '나 따뜻한 그곳에 들어가게 해달라'라는 환청이 들리는 울음소리를 냈다. 퇴근 무렵이라 홍냥이를 넣어줄 수 없었던 내게는, 그 눈빛과 소리가 마치 빚처럼 남았고 내 그런 맘을 알고 있다는 듯, 홍냥이는 마치 밀린 빚을 받으러 오는 것처럼 당당하게 전시관 앞으로 왔다.

110812.jpg 박물관 문만 열면 와서 밥 달라던 냥이들.


알고 보니 그 동네에서 어릴 때 이미 사람들과 친했던 홍냥이는 사료도 주는 대로 먹지 않았고 심지어 간식 캔도 맛이 없으면 안 먹었다. 그렇게 감성 풍부하고 커뮤니케이션에 능했던 홍냥이 덕에 우리는 고양이의 세계를 접하게 됐다. 홍냥이는 우리 전시관에서만 새끼들을 세 번이나 낳아서 가족 모두 데리고 왔다. 안타깝게도 그 가족들 중 많은 새끼들은 일찍 죽었고 우리가 떠나올 무렵에는 새끼 한 마리만 남아 있었다. 우리가 떠나올 때 홍냥이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동네에서 인기 많았던 홍냥이는 다른 집에 입양되었다.


파주 헤이리 박물관 개관을 앞두고 내부 공사가 한창이던 때 예쁜 노란 고양이 한 마리가 건물 앞에 있었다. 근처에서 사료를 사다와 주었다. 처음엔 경계하더니 점점 가까워졌다. 우리는 '산초'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1층의 포토 앤 디자인 사무실에는 '또루'라는 이름의 강아지가 있었다. 사람을 좋아하는 데다 다혈질의 정열적인 이 강아지는 사람들만 보면 정열적으로 달려와 인사를 했다.

112210.jpg 쉿! 고양이 촬영중!


박물관이 문을 연 뒤에도 산초와 또루는 매일 찾아왔다. 특히 또루는 사람들이 우리 강아지인 줄 알 정도로 매일 와서 박물관을 한 바퀴 둘러본다. 전시관 안에 강아지가 들어와도 될까 싶었는데 많은 관람객들이 오히려 또루를 너무 사랑해 준다. 아이들이 있을 때면 "강아지 안 무서워?"라고 물어보는데 무서워하는 사람이 극소수다.


내가 처음 쓰다듬고 애정을 보이는 강아지가 또루다. 또루 조차 처음엔 낯설었는데 얼굴 보는 횟수가 잦아지고 이 녀석이 하도 귀엽게 굴다 보니 내게도 변화가 왔다.


조그맣던 산초는 어느덧 성장해 색시 배추를 데려왔고 새끼들을 낳았다. 우리는 그 새끼들에게 까망베르, 후추, 상추, 고추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후추와 상추, 고추, 까망베르는 애기 때 박물관 창문에서 보이는 테라스에서 자랐다. 나도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들도 그 창문 너머로 한참 고양이 새끼들을 바라보곤 했다.


어린 관람객들은 인형보다 고양이 가족과 또루에게 더 관심을 갖는다. 털북숭이라 바닥에 누워있다가 '인형'으로 오해받기도 한 또루는 다혈질이면서도 애들한테는 순해서 더 많은 사랑을 받는다.

160729.jpg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안겨주던 냥이들.


우리가 처음 인연을 맺었던 산초는 어느새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갔는지 어디가 아팠는지 알 길이 없다. 우리를 제일 잘 따르고 제일 예뻤던 후추도 지난 겨울에 영문도 모르게 세상을 떴다. 가슴이 아팠다.

그새 이 영역에는 또 다른 고양이 엄마와 새끼 두 마리가 와서 가끔 배추네 가족과 신경전을 일으킨다. 예전 홍냥이는 꽤 공격적이었는데 이곳 고양이들은 신경전도 그리 사나운 기세가 아니다.


가끔 가만히 앉아서 또루랑 놀고 또루를 한참 쳐다보고 또 고양이 가족들을 한찬 쳐다본다. 비교적 겁이 없는 후추랑은 친해져 볼까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곳에는 가끔 새도 날아와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준다.

11855854_1743917902502537_8134059317204647920_n.jpg 헤이리 9번 게이트 언덕의 귀염둥이이자 말썽장이 또루. 괜히 몸집 큰 옆집 개한테 시비 붙었다가 다쳐서 밴드 신세.


개와 고양이가 개근 관람객이라면 1년에 한 철, 박물관을 지나가는 녀석들이 있다.

철새들. 철새 떼가 함께 날아가며 울음소리를 낼 때면 왠지 나도 아련한 고향 생각이 나고 빨리 집에 돌아가야 할 것 같다. 저녁 무렵 박물관 위를 날아가는 철새들은 장관을 연출한다. 한 마리의 낙오자도 없도록 줄을 맞춰 날아가는 모습이 따뜻하기도 하다.


또루도, 배추 가족도, 새로 온 고양이 가족도(배추 가족과의 의리 때문에 이름을 안 붙였는데 이제 붙여줘야겠다.) 가끔 찾는 새들도, 그리고 철마다 이곳을 지나가는 철새들도, 또 우리도 이웃도 이렇게 오래오래 지내고 싶다.


#브런치북 #박물관의하루 #지오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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