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 센 모녀 3대의 동거_2
리모델링을 위해 30년 된 집을 뜯어내니 예기치 못한 집의 역사가 나왔다.
지금은 방이 2개에 화장실이 하나에 꽤 너른 주방을 가진 이 집은, 원래는 실내에 방이 4개였다. 아마도 지난 30년간 사람들의 생활 패턴이 변한 탓에 작은 방 하나는 화장실이 되고 또 다른 방 하나는 부엌이 되었던 것이다.
왜 방 하나가 화장실이 됐을까? 아하, 그러고 보니 이 집에 외부 화장실 흔적이 아직도 남아 창고처럼 쓰이고 있었다. 어둡고 침침한 분위기에 마당에서 꽤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어 없애기로 한 터였다.
외부 화장실.
아주 사소한 공간 하나가 어느새 나를 40년 전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했다.
나도 어렸을 적엔 이렇게 바깥 화장실을 사용했더랬지.
기억이란 신기한 것이어서 이때까지 저 깊은 곳에 있어서 너무 깊은 곳에 있어서 생각 한 번 해보지 않았던 것들까지 사소한 단서 하나를 시작으로 줄줄이 꿰어 나온다.
외부 화장실에 대한 기억은 더 그렇다.
뭐 그리 꺼내보고 싶은 기억이었을까. 외려 빨리 지우고픈 추억에 가까울 터.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인가, 나는 기꺼이 그 기억들을 마주하게 된다. 가끔씩 문 열기 싫었던 기억, 추운 날이면 참고 참았다가 마지못해 향한 기억, 학교에 가져갈 채변봉투에 끔찍했던 기억, 쪼그려 앉느라 다리가 후들거렸던 기억까지...
그래, 외부 화장실의 시절은 갔다.
우리도 꽤 넓은 이곳을 헐고 조그만 텃밭이나 화단으로 만드려고 한다.
그 옛날 부산 대연동 우리 집에서 사라져 버린 외부 화장실이 그랬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의 생활이, 이야기가 담겨있을 화장실이, 제 수명을 다한 게 별스럽게 애틋했다.
천정에도 세월의 흔적이 있었다. 32년 전 상량을 한 날짜가 적혀 있었다. 천정은 한 차례 보수를 한 흔적도 있었다. 32년이 세월 동안 천정 한 번 보수하고 지붕도 새로 하고 방은 화장실이 되고, 또 방은 부엌이 되었다.
집도 나이를 먹어가는구나. 집이 사람처럼 영혼이 있지는 않겠지만 많은 영혼들이 머물렀고 또 머무는 곳이니 집의 나이는 다른 사물의 나이와는 또 다르게 느껴진다. 마당의 제법 키 큰 감나무 두 그루 역시 집의 나이를 말해주었다.
시간이 흐르며 변하는 건 집이나 집의 화장실만이 아니다. 그렇게 어린 시절 외부 화장실을 끔찍해하던 나 역시 나이가 들어 그 시절을 제법 그리워하며 기억해 내듯이.
나도 엄마도 나이가 들었다.
엄마와 나는 부산에서도 같은 집에 살진 않았다. 몇 년 전 102세로 돌아가신 외할머니도 엄마도 나도 부산 대연동 같은 동네에서 각자 따로 살았다. 생각해 보면 모녀간 얼마든지 같이 살 법한데도 서로 같이 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각자의 공간이 편해서였다.
모르긴 해도 십 년 전이었다면 엄마와 같이 사는 건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유전자의 영향이겠지만) 서로의 고집을 익히 알고 있었고 조율보다는 충돌이 많을 것이라는 것 역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상황은 좀 바뀌었다.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어 서로를 좀은 걱정하기도 했을 것이고 시간이 흐르며 힘도 고집도 조금씩은 약해져서 서로가 좀은 부드러워졌다. 충돌이나 갈등을 키우는 대신 이야기로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세월은 인생에서 무엇이 소중한 것인지 조금씩 가르쳐 주면서 이렇게 소중한 것을 꼭 지켜나가라고 충고해 주는지도 모를 일이다.
시간 앞에서 집이 서서히 변해가듯 사람도, 그리고 그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조금씩 변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