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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o Jul 23. 2017

30년 된 구옥을 바꿔라!

고집 센 모녀 3대의 동거 _ 1 

인생이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라지만 서울에서의 잦은 이사에 지쳐 내 최후, 조금 양보하자면 최후의 전 단계 보금자리쯤으로 생각하고 집을 사서 이사한 게 지난해 11월. 새 집인 데다 세 식구가 살기에는 넓은 편이어서 햇빛이 충분히 들지 않는다든가 동네가 조금 어수선한 점을 빼면 꽤 만족스러운 집이다. 그런데 채 1년도 되지 않아 또 다른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됐다.  이번엔 친정어머니와 합치기로 했다. 엄마와의 동거는 23년 만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마치 인생의 정해진 수순 같기도 하다. 나는 부산에 있다가 10년 전에 올라왔지만 동생은 진작 경기도 산본에 살고 있었고 어머니 혼자 부산에 사셨다. 60대에 어쩌면 어머니는 인생의 황금기를 누리셨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어렸을 적  생계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시고 딸(=나)이 결혼한 뒤엔 떠 손자 손녀 돌보느라 힘드셨는데 내가 서울 올라온 뒤 그나마 조금의 경제적 여유와 자유를 만끽하셨기 때문이다. 


60대 할머니가 하기에 놀라운 일들-인터넷 동갑모임 가입, 번개, 자전거 배우기, 심지어 포토샵 도전까지-다 하시더니 70대가 되시면서 몸이 조금씩 안 좋아지셨다. 한두 번 쓰러지신 적도 있어 어쩌면 어머니도 나도 조만간 같이 살아야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머니나 나나 가까인 살 지언정 동거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많은 요인이 있겠지만 어머니도 성격이 강하신 데다 나나 내 딸도 만만찮고 뭔가 불편할 것이란 예감 같은 것도 있었겠다. 이런저런 변화가 생기면서 어머니도 자녀가 있는 곳으로 오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기왕이면 딸 집 근처가 좋겠다고 판단하셔서 지난봄 어느 날, 파주에 오셔서는 나와 함께 파주 곳곳의 집을 둘러봤다.


부산에서도 평생 단독주택에 살다가 최근 5년 여 빌라 생활을 한 어머니는, 빌라가 갑갑해서 싫다고 하셨다.

싸고 허름한 파주의 단독주택을 알아보고 다녔다. 작게라도 마당이 있어 상추도 심고 고추도 심어 가꾸는 게 어머니의 로망이었다. 하루 이틀을 꼬박 다녀도 마음에 드는 곳은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어머니가 부산에 내려가려고 하는 날 아침 본 집이 가격도 위치도 적당했다. 가격이 적당할 수밖에 없던 것이 전철역 가까이 있지만 30년이 넘는 구옥이었다.


처음엔 어머니 혼자 사실 생각이었다. 나는 야당역, 어머니는 운정역. 그런데 계약을 해놓고 어머니나 나나 기껏 가까이 살면서 굳이 따로 살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자연스럽게 같이 살자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고 아이들도 할머니의 '잔소리'를 걱정했지만 대체로 찬성했다.

30년이 넘은 구옥. 여기를 어떻게 리모델링할 것인가가 첫 과제가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새로 가게 된 집이 구옥인 데다 방이 2개라는 사실. 식구는 네 명인데 방이 2개뿐인 것이다. 처음엔 어머니와 내가 거실에서 자기로 했지만 아무래도 딸과 내가 거실에서 자는 게 나을 것 같아 그렇게 하기로 했다. 어머니 방에 침대는 2개를 두되 방 2개는 어머니와 준영이가 차지하기로 했다.


하나가 정리되니 또 다른 문제가 남았다. 30년 된 구옥. 난방이 심하게 안돼서 심야전기인데도 불구하고 난방비가 30만 원이 넘는다는 말에 놀란 나는 집의 전면적 수리를 주장했고 어머니는 도배, 장판만 하고 살자고 하셨다.


이마저도 자연스럽게 정리되었다. 집을 수리하는 두 명의 관계자분이 온 결과 단열도 보일러도 문제. 집은 결국 전면 리모델링을 하게 됐다. 다행히 목수 일을 하시는 이종사촌 오빠가 열흘 정도 시간이 있어 집을 도맡아 수리해 주기로 했다. 열흘 만에 끝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를 안고 집의 리모델링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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